시와 수필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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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사이에서 / 유리바다이종인
돌아보면 나는 어쩌면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었는지도 몰라
지금도 혹 그리될까 봐 나를 몹시 경계하고 있다
평소 춘란에 관심하여 산을 떠돌았던 내가 90년대에
한국춘란 전문점을 개업했다
처음엔 제법 잘 나갔다 대구춘란 난 상인회 회원이었으니까
아이엠에프가 오고 기울기 시작했다
당황했던 나에게 이름 모를 까치들이 찾아와 속삭였다
소속이 분명하지 않는 새의 말은 듣지 않았어야 했다
여러 실패를 거듭하자 나는 뒤늦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 정확하게 내 옷을 발가벗긴 돈이 2억 2천만 원이었구나
부모님 유산을 먼 타국인 듯 이방에게 탕진하였구나 그 후
바다 깊은 곳을 찾아다니며 잠수의 세월을 보냈다
모른다 그 시절 사람들은 모른다
가끔 유튜브를 열어보면
얼굴 새까만 후배가 교수의 옷을 입고 거대 농장에서 난초 강의를 하고 있다
나는 그때 택시를 몰고 다녔다
나는 너를 알아도 너는 나를 모르는 수십 년 세월 동안
결코 광고할 수 없는 혼자 시인으로 살게 될 줄 몰랐다
이제 나의 세포는 아플수록 밝아지고 있다
과거의 어둠이 빛으로 변하는 삶에 감사할 뿐이다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친절 뒤에 오는 사람의 배신이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때 그 사람의 말이 맞다
비록 나에게 사람은 없으나 계절에 속한 동식물과 대화를 한다
얼마 전부터 풍란에 관심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민춘란 풀떼기 하나 없이 세월 보냈으나
지금은 나를 위해서라도 부드러운 삶을 살고 싶다
19평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풍란을 여러 화분 키우고 있다
착생하여 바람을 먹고사는 강인한 놈에게 배우고 있다
그래 빛과 공기 중에도 영양분이 있지
풍란을 처음 입문하며 저가의 품종을 사들일 때
구석에 숨겨둔 500원짜리만 모은 돼지 저금통을 터뜨려 보니
와르르 21만 원이 바닥에서 저절로 도축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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