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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 . 수의를 짓다 / 안행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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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호월 안행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7회 작성일 17-08-22 17:26

본문

노루발  / 안행덕

 

 

먼 하늘 그리워 울음 삼킨 숲

잎마다 푸른 그늘이 내려앉은 그곳

어둠을 빠져나온 여린 노루발 꽃송이

전설을 방울방울 피워내고 있다

 

은혜를 아는 노루는

산에만 발자국을 찍는 게 아니었구나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옹색한 달셋방

달빛을 콩콩 찍고 가는 발자국도 있다

 

매일같이 낯선 길을 돌고 도는

수선 집 재봉틀에 달린 노루발

허기진 발로 밥 한 공기 찾아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구닥다리 낡은 세월 뒤집어가며

이웃의 서러움도 꾹꾹 밟아 기워내는 발

 

툭툭 뜯어진 옷깃, 털어내는 발톱 끝에

싸라기처럼 묻어나는 실밥을 먹고

야윈 발가락이 절룩거릴 때마다

덧대고 이어주면 드디어 빛나는 진실

오늘도 생의 늑골 밑을 환하게 비춘다

 

 

 

 

수의를 짓다 / 안행덕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날
홀연히 가신다기에
노란 안동포 삼베 한 필 끊어다
어여쁘신 날개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주머니조차 만들면 안 된다 하십니다
이승의 맺힌 마음 저승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매듭을 지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실 끝을 옥매지도 말라 하십니다
치자열매 노란 빛깔 흘러나오듯
어머니 지나오신 발자국이
눈물에 번져 흐려집니다
한 많고 설움 많아 떨치기 힘든 세월
차마 놓지 못하시고
눈꺼풀 무겁게 붙들고 계십니다
훨훨 가볍게 한 세상 날아오르시라고
금빛 날개 고이 달아
어머니 수의를 짓고 있습니다
 
 
2013년 격월간 현대문예 1,2월호 (72호)에 특집2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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