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서 있으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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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무가 모두 베어지고 나무 두세 그루만 남아
남은 흔적의 숲길마져 사라진 뒤에 그곳
숲이라고 불리워야 할지 숲이였다고
초록의 등걸에 고라니 숨결 떠나고 밤새도 오지 않아
해가 바뀌어도 계절이 찾지 않는 이곳
별빛이 쉴 숲속 나무들 모두 사라진 뒤
며칠간 홀연히 나타난 비가 숲의 검붉은 눈물이
웅덩이 이곳저곳에 남을 때
이곳이 숲이었다고 다시 말해야 할지
그러나 바람이 있어 이곳에 다시 따뜻한 해가 나면
휘파람이 떠나간 천사의 뾰족한 작은 입술
하늘에서 다시 너울거리며 내려올 거라고
그리하여 나의 등에도 다시 푸른 잎 피어나
고라니가 예약해둔 남은 나뭇등걸로 언젠가
그 밤새가 다시 올 거라고 그때쯤이면
별이 하늘로 오르고 그 길을 따라 내가
별빛과 함께 흔들릴 수 있을까
나무 두어 그루 저기 아직 서 있으니
댓글목록
정건우님의 댓글

오늘은 / 정건우
아버지, 오늘은 영이 맑으신지
병실에서 나와 바라보시네
저 창 밖 깊은 계곡에, 구름이 내려앉은 능선에
바람이 부는지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손짓하는 것들
양미간을 좁히고 조준하듯이 보고 계시네
옆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이제 아버지를 한참이나 초월하신 도인이네
눈물이 그렇게 말하는데
저 이슬은 아마도 삼만 년 전 것일 듯
안개로 구름으로 비로 억겁을 떠돌다 지금은
다시 구름으로 저 능선에 앉은 것인데
아버지, 그것을 알아보시는지 우시네, 아니 웃으시네
삼 만 년 전, 그 웃음과 눈물의 경계마저 허무시네
저 손짓이 낯익은지 눈이 빛나네
당신 몸을 빌려 살았던
온갖 것들 소리가 저 계곡에 가득하네
아버지, 오늘은 영이 맑으시네
당신이 거느리신 영혼의 그늘 속에서
이슬도 초롱하네.
이강로 시인님, 아마도 삼 만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 멀지 않다고 봅니다.
이강로님의 댓글

졸시에 향 가득한 언어, 귀한 촉,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