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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 정건우
첫 소변 데이터를 기록하고
평생토록 식전에 먹는 비뇨기 약 한 알을 삼키고
밤부터 불려 논 누룽지에 불을 넣었다
창문을 열며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이 돼서야 비로소
난도질당하던 꿈길의 공포를 지우고
말갛게 헹궈질 수 있었다
가파르게 앉아 있는 창틀 먼지에서
자작나무 향기가 난다
간밤에 악몽이 깊었나 보다
내 오줌길이 끊기고 이어지고를 반복하는 동안
일찍 봄이 오시려는지
조만간 누가 올 거라는 기별의 예고였는지
이따금 바람이 창을 두드렸던 모양이다
지난밤에 이 먼지는
바람의 한 자락이었을 것이다
눈꽃 가득한 시베리아 숲길도 돌아 나왔을 숨결
꽁꽁 언 가슴, 녹일 것을 찾아 헤매다
끝내 부딪힌 갈망의 파편이 이렇게 보드랍다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외수 동생 같은 칠층 남자가
차 시동을 걸고, 담배를 물고, 화단에 쪼그려 앉아
십오층 꼭대기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길 건너 멕시칸 통닭집 셔터 올리는 소리가
촤르륵 거리다가 삼초 정도 멈춘 후,
카악 퉤, 가래침을 뱉는 남자의 곯은 술 냄새
오늘도 내 귓불을 달군다
별스레 눈물이 많아졌다
저렇게 아침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일상이
어느 날부턴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선명한 그림자로
내 지갑 안쪽에 자리 잡고부터,
날 잡아 창 빼고 물 끼얹어 닦아내던 먼지를
엄지 검지로 비벼보던 순간부터.
댓글목록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조만간 누가 올 거라는 기별의 예고였는지
이따금 바람이 창을 두드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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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시는 걸 자제하여도 소변이 그렇더군요
요즘처럼 밝은 약이나 비뇨의료계라 하여도
게을러서 그런지 아예 병원에 안 갑니다
사실 이젠 딱히 써먹을? 데도 없고요
기계도 오래 되면 마모되는 법인데 육체라고 별 다르겠어요
그만큼 써먹었으면 된 게지요
이건 비밀인데 시인님만 알고 계세요
가끔 여자 생각이 나긴 해요
불협화음이 잦은 소변으로 하여 새벽잠을 깨워도
아 나는 파도 속에서 참 많이도 몸을 써먹었구나 하여
긍정의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정건우님의 댓글의 댓글

예, 이종인 시인님.
패혈증 이후 후폭풍이 참으로 만만치 않네요.
한동안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