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둥지를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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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둥지를 부숴버렸다 / 유리바다이종인
그 해 봄 나뭇가지 지푸라기를 부지런히 나르며
나는 실패한 둥지를 새로 짓기 시작했다
산문으로 짓지 않고 외로운 詩로 지은 둥지였다
둥지가 완성되자 여자 셋이 좋아라 찾아왔다
나는 노숙자처럼 얻어먹어도 되느냐 붉은 얼굴로 묻곤 했었는데
그래도 좋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둥지는 이름뿐이었고 낮이나 밤이나
주로 밖에서 거시기했다
빈 둥지 안에는 먼지가 쌓이고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첫 시집이 나오자 여자들은 하나 둘 떠나고 말았다
방치된 둥지 위로 청둥오리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도 둥지를 부숴버리고 원양어선을 타고 떠났다
다 떠나자 오히려 내가 버렸다 위로하며 살았는데
우연한 세월 그 나무 아래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여자 하나가 나뭇가지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새로 둥지를 지어줄 수 없느냐고
댓글목록
노장로님의 댓글

시인의 마음이
글에서 보이네요
부술수 있는 용기는
또 지으면 되니까요
용기가 가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