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탈 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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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탈탈 털렸습니다 / 유리바다이종인
그 후 IMF가 찾아와 나에게 뜬금없이 실패를 물었습니다
억울한 내 소리는 또 어느 바람이 빼앗아 갔습니다
나는 도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20 억을 날리고도 한동안은 견딜만했습니다
낯선 물귀신들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친절과 위로의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50만 원 달랑 들고 부산 완월동에서 여름 하룻밤을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자가 땀 흘리는 나를 밤새 시원한 얼음으로 닦아 주며
냄새나는 양말도 비누 물로 빨아주더군요
어디서 왔느냐 하니 인천에서 왔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니 수중에 50만 원도 탈탈 털어줬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그녀의 돼지 저금통에다 동전만 수북 찔러 주고 나왔습니다
미안하다 거제도에서 하루 보내고
육지로 돌아가는 뱃머리 후미
프로펠러에 내 몸을 던져 갈가리 찢어버리련다
후미 끝에 서서 물살 거품을 내려다보니 겁이 났습니다
다시 되돌아와 택시를 타고 앞산으로 가자하니
한밤중에 이를 이상히 여긴 기사가 같이 술 한 잔 하자
내가 쏠 것이니 술 한 잔 하자 하더군요
새벽에 포장마차에서 깨어나 보니
택시도 기사도 사라지고
내 뒷주머니 지갑에는 주민등록증만 혼자 있었습니다
늙어가는 나이에 더 털릴 것도 없으나
내 육체가 다 털린다 하여도 다만 한 가지
내 영혼이 우주보다 더 큰 재산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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