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에 나는 놀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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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 나는 놀고 먹었다 / 유리바다
옛날에 그랬다
배짱이 소리 들어가며 여름이면 나는 놀고 먹었다
개미 집을 파헤치면 애벌레가 나온다
무엇을 준비하는 비장한 일이라도 있는지,
주는대로 먹고 마신다
다만 나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늘 애벌레였다
어여 먹어야 후딱 클 거 아닌게벼, 그 생각 밖엔 없었다
육체로 자란 것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으로 자란 것은 영생을 이룬다는데
그런데 애벌레로 살던 나에게
송구영신 호시절 불로불사 인영춘 한다는 소식
어느 외모가 초라한 어미 개미가 일러주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꿈을 꾸며 자라났다 과연,
내가 어른 개미가 되어 집밖에 나와 보니
수만 마리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보다
한마리 외로운 어미가 들려준 소식이 참말이었다
배짱이가 아름다이 노래하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그 시체를 다른 개미가 분해하는 동안
나는 꿈과 함께 빛을 향해 날아가는
한마리 날개달린 개미가 되어 있었다
댓글목록
노정혜님의 댓글

깊은 시향에 한참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제 목소리가 좀 그러합니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군요. 다양한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자연 사물도 음악도 그러하지 않은가요.
정혜 시인님.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