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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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대한 기억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나 어린 시절에는
학교길 십리길을 따박 따박
걸어 다녔다
어느 늣은 봄날
허기진 배 주려잡고
진달래 꽃잎 따먹으며
타박 타박 걸어
집에 와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낮익은 손님인
소장수 한 분과
소 값을 흥정 하고 있었다.
아마도
소를 팔아야 되는 것 같아 문풍지에 귀 대고
창호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고 있던 나는
소 값 따위는 관심 없고
손님과 밥 자시는
아버지나 손님 두 분 중에
어느 한 사람이,
흰밥을 남겨 주기를 고대하며
주린 배 잡고 기다리다
밥 식기를 다 비우는 숱가락 소리에
그만 눈 시울이 붉어졌다
우리집엔 손님이 오면
점심에도 따신 밥을 해
대접하는 날이 더러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이팝 나무 흰 꽃을 꺽으며
쌀밥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눈물 머금고 부엌에 가면
어머니가 누룽지 밥을 주며
나를 얼리고 달래고 있을 때
마당가 어미소의 큰 눈엔
눈물 가득이 그렁
그렁거렸다.
망나니처럼 놀던 송아지 목에도
밧줄이 걸려 있었고
어미소의 눈동자만 보아도 아버지가
흥정에서 송아지를 팔기로
결정 했음을 알아챈 나는
눈물이 펑펑 더 쏟아졌고
어머니도 앞치마로 눈시울 흠치고 있었다.
어린 것이 차에 올라 집 떠나고
어미소의 눈물, 울음은 온 동네에 퍼지고
산 모퉁이 돌아 나가는
음매 음매 송아지의 울음이 메아리지던 날
날 달이 다가고 해가 지나도
마당가 쇠말뚝에는 어머니의 눈물
어미소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지 가장의 사명감 하나로
흰밥으로 점심을 자시며 송아지를 팔기로 한
아버지의 결단이 야속했으나
이제야 이해가 된다
흰 밥에 왈깍 울던 나도
지금은
아버지처럼 냉정해야 할 때가 더러 있으니까?
댓글목록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한편의 동심으로 돌아가는 눈물의 드라마를 봅니다
동심이 흘리는 눈물과 어른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다르지요
동심의 눈물은 <순수> 그 자체이며
어른의 눈물은 <회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눈물은 인생에게 가장 값진 것입니다
최홍윤님의 댓글

부족한 글에 머물러 한 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요 어린 시절의 눈물은 순수했으나 지금의
눈물은 회개 혹은 분노의 표출이 될 수도 있지요.
눈물 없이 살아가는 인생과는 대화조차 안 하겠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긴하나 이젠 모두 많이 늙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