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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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
꽃향기는 경계선 없이 흩날리고
오후 햇살은 화살처럼 쏟아진다.
그림자는 일제히 동쪽으로 비켜서고
귀룽나무 꽃가지에 나비 떼 존다.
길손 뜸한 숲길에는
앙증맞은 풀꽃이 오수(午睡)를 즐기고
앙당그레 뒤틀어진 고사목에
딱따구리 한 마리 열심히 굴을 판다.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연무에 갇혔지만
작은 숲에는 내가 원하는 평화가 흐른다.
차량들 질주하는 저 아랫마을에는
간판과 간판 사이에 뜨거운 불꽃이 튀고
온갖 지저분한 언어들이 휴지처럼 뒹군다.
팽팽한 긴장감은 고압 전류처럼 흐르고
웃음 뒤에 숨겨진 비수는 늘 상대를 조준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어가는
치매 노인은 하나도 없다.
대낮에도 두 눈에 불을 켜고
먹잇감을 쫒는 아쿠라움의 물고기들이다.
나도 그 가운데 휩싸여
물레바퀴처럼 쉬지 않고 돌지 않았던가.
공해에 찌든 가슴을 솔바람에 헹구고
독기 가득한 두 눈을 꽃잎에 씻으면
머리카락처럼 일어서던 스트레스가
방광 아래로 가라앉는다.
4월의 하늘빛이 내 얼굴로 쏟아진다.
2020.4.15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깊은 묘사력에 감탄합니다.
세밀한 관찰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노정혜님의 댓글

귀한 시향 감사합니다
정심 김덕성님의 댓글

봄날 오후의 풍경은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가는 양상입니다.고즈넉한 거리에서
공해에 찌든 가슴을 솔바람에 헹구고
독기 가득한 두 눈을 꽃잎에 씻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시향에 머물다 갑니다.
시인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서
따뜻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藝香도지현님의 댓글

등 뒤에는 비수를 숨기고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
독기가 가득한 눈빛을
오후의 햇살이 씻어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작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어제 봄햇살은 참 고와서
벌들의 활동도 더 분주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곱게 피어나는 봄꽃들을 오가며
한해 먹울 꿀을 비축하듯
오늘도 행복한 봄날 보내시길 빕니다~^^
박인걸님의 댓글

다녀가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향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