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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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언덕
4월 하순은 도시의 허파가
연녹색 피를 수혈 받으며 펌프질을 한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이
두렵던 기억을 뇌리에 대 못질 하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행패를 부린다.
오늘도 버릇대로 그 언덕을 오를 때
머리를 풀어헤친 바람은
실성한 모습으로 내 얼굴에 모래를 뿌렸다.
나는 자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백일해를 앓았다.
내 영혼이 강풍에 강 건너로 불려갈 순간
어떤 페니실린에 의해 기사회생했다.
영롱한 꿈이 뭉게구름을 탈 때
소름끼치는 강풍은 꿈을 빼앗아 시궁창에 던졌다.
백의 천사가 건네 준 스트렙토마이신이
엉덩이 근육을 깊이 뚫고 들어와 꿈을 건졌다.
폭풍이 불 때면 나는 손을 내밀었고
여지없이 달려온 강한 손이 붙잡았다.
바람이 아카시아나무 위를 달린다.
지금은 붉은 햇살을 언덕너머로 끌고 간다.
엊그제 막 피어난 연한 순이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파랗게 돋는 풀잎이 울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이정도의 바람을 맞아야 세상을 산다.
네댓 차례 강풍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꿋꿋이 서 있을 때 드디어 제 구실을 한다.
오늘 부는 바람은 하나도 춥지 않다.
2020.4.21
댓글목록
정심 김덕성님의 댓글

바람부는 언덕에 섰을 때
인생의 바람이 너무 거셀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강한 바람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정도의 바람을 맞아야
이 세상을 살 수있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정말 지금 세상에서
필요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귀한 시향에 머물다 갑니다.
시인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셔서
따뜻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표현의 깊이가 압도적입니다.
감탄! 또 감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원문님의 댓글

네 시인님
어제 세차게 그리 바람 불더니 저녁의 밤에는
눈발이 조금 날렸지요
꽃샘 추위도 아니고 이상한 날씨인데
겨울이 아직 꼬리를 못 감춘 것 같아요
잘 감상했습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더니
이어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제법이나 쌀쌀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럼에도 봄꽃은 화사한 미소 잃지 않고
봄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백원기님의 댓글

시인님께서도 바람부는 언덕에 서계셨나 봅니다. 봄바람치고는 대단한 강풍이였습니다. 자연도 가다가다 심술을 부리는데 인간은 더하리라 생각됩니다.
노정혜님의 댓글

깊은 시향 감사합니다
藝香도지현님의 댓글

오늘도 강풍이 불어
다시 겨울로 돌아 간듯합니다
그 동안 광풍이 몰어쳐서
이제는 강풍도 면역이 되었습니다
고운 작품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하시기 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