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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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성(城)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가파른 성에 갇혀있었다.
요각(凹角)이나 철각(凸角)에서 봐도 산이었다.
하루 종일 햇볕이 성안에서 놀다가
저녁이면 긴 노을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밤이면 별빛 달빛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구름 낀 날이면 성안은 그믐밤이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유로웠다.
밤이면 등잔불이 아버지 마음을 지켰고
두꺼운 돋보기는 혼자만의 세계를 보는 눈이었다.
그 돋보기는 성구(聖句)를 확대했고
성구는 노끈처럼 아버지 눈으로 들어갔다.
깊은 성에 갇힌 아버지의 도구는
낫과 도끼와 호미가 전부였다.
그 땅은 불안한 성이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 성(城)을 탈출하자고 부추겼지만
아버지 신념은 말뚝에 매어있었다.
고집 센 노인은 스스로 찾아 온 성을 좋아했고
거기서 결국 눈을 감았다.
그 성에는 사시사철 고운 꽃이 핀다.
나도 그 성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0.5.6
댓글목록
노정혜님의 댓글

꽃 피고 산새 노래하는 성
개울 물소리 경쾌하고 인심또한 고운곳
그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5월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깊은 표현의 시심,
잘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안행덕님의 댓글

아버지를 그리는 효심이 보이네요
나도 그 성에 갇히고 싶다
그리운 맘 간절함이 애절합니다
고운 시어에 공감 한표 찍고 갑니다 시인님 ...........^^
정심 김덕성님의 댓글

귀한 시향에 머물다 갑니다.
시인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아버지의 성
당연하듯 살아왔지만
여태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고
따뜻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