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禱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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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인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97회 작성일 20-06-20 04:26본문
도고(禱告)
밤꽃이 피는 언덕에는 바람이 불고
내 마음은 나뭇가지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청색 모자를 눌러쓰고 뒷산에 올라
뿌연 동네를 내려다보며 간절히 도고(禱告)한다.
그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 도시에서
내 삶의 절반을 전제(奠祭)물로 살았다.
나의 간절함을 짓밟는 미워하는 눈동자와
목에 핏줄을 세우며 쏟아내는 외침을
애써 외면하는 낯빛에도 낙망하지 않았다.
나의 이름을 지저분한 발로 누르고
내 호소를 종이처럼 구겨 시궁창에 처박아도
태연한 미소로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휘청거리는 사내들과
총명(聰明)을 잃고 밤새도록 배회하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
떼창을 부르며 버리는 아까운 시간들을
날마다 쓸어 담으며 안타까워했다.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민 계집들이
촘촘한 카페에 온종일 퍼질러 앉아서
쓸데없이 세월을 갉아먹을 때면
가슴에는 화덕불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래도 나는 절망하지 않으며
넘어진 깃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꼭대기에 붉은 깃발을 달았다.
어느 날엔가 제정신을 찾는 날이 오면
저 깃발에 푸른 별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나의 도고(禱告)는 애원으로 바뀐다.
2020.6.20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깊은 묘사가
참으로 섬세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하영순님의 댓글
하영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인님의 삶이기도 한 시 감명 받고 갑니다
노정혜님의 댓글
노정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깊은 시향 감사합니다
박인걸님의 댓글
박인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녀가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