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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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론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통을 비워보라
비움을 멈출 때 그릇은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다
끊임없이 채우고 다시 비울 때
그리하여 처음처럼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때
그릇은 비로소 그릇이 된다
숨을 뱉지 않고는 새로운 숨이 들어올 수 없고
소리가 나가서 속을 비우지 않고는 피리를 불 수 없듯
어떤 숲도 자기 속을 덜어내지 않고는 제 안에 길을 낼 수 없다
세상은 온통 그릇으로 가득하니
하루도 24시간을 담는 시간의 그릇이 아니던가
지구도 바다를 담고 있는 물그릇이 아니던가
밤하늘도 별들을 담고 있는 빛그릇이 아니던가
내가 누워 자는 방도 집도 나를 품은 그릇이니
제 속을 비우지 못한 사람은 여유도 여백도 없을뿐더러
그 무엇으로도 큰 그릇이 못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청과 겸허함으로 더 커지는 말그릇처럼
모든 시공을 경계 없이 다 품고 있는 하늘처럼
그 무엇이든 비우면 비울수록 더 큰 그릇이 된다
모든 그릇은 오직 비움의 자세로 제 일생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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