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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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노숙자
숲에 비 내린다
잠시 주저할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뼈를 묻어야하는가
매연 가득한 잿빛거리에 마음 둬야하는가
장맛비에 젖은 한탄의 시간
숲에 대한 흠모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끝내 접지 못할 꿈이었을까
숲에 바람 분다
온 몸을 다해 수천수만 잎을 흔들며
행여 돌아오라는 반가운 소식 전해져올까
잉잉대는 전선줄에서 귀를 떼지 못하는 것이다
고향 길에서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에 코를 벌름대는 것이다
먼 산 가을단풍소식에
바람의 가슴께에 매달려 흐느끼는 것이다
숲에 눈 온다
코앞이 백년 거리쯤 될
이웃한 가로수들 속살까지 다 벗어
아문 듯 보란 듯 눈꽃 피우고
세월의 무게를 벗어내고 있는 것이다
목 길게 빼고 까치발을 든 채
봄을 향한 비장함으로 버텨서는 것이다
숲에 봄이 온다
한 줌 햇살 녹아내리면
허공을 받쳐 들고 새들 노래 청해듣는 것이다
소풍 길 아이 보며 발길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전지(剪枝)당한 상처위에 희망을 꽃피우는 것이다
늘어나는 나이테의 아픔마저 잠시 미뤄두고
늘 그렇듯 또 한해를 걱정하는 것이다
숲이 어둠에 젖어든다
잠투정 이파리들 어르고 달래며
언젠가 숲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가로등불빛 아래 주문을 거는 것이다
신작로 저 멀리 숲길 그리워
서산에 해 걸어놓고 길을 묻는 것이다
밤마다 숲의 소식을 달빛에 묻는 것이다
별자리 짚어가며 이슬눈물 짓는 것이다
도시가 뿌옇다
오늘도 나뭇가지 끝에 걸린 희망을 본다
답답했을 도시가 푸르게 숨 쉰다는 것과
딱딱했을 거리가 살랑거린다는 것이
애초부터 가로수의 몫인가
인간의 몫인가 잠시 헷갈려도
거리마다 가득히 사랑이 피어올라
시련 이겨낸 꿈이 이뤄지길 비는 것이다
댓글목록
淸草배창호님의 댓글

네~
2월의 첫날,
결 고운 시상에 흠뻑 적시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또 다른 노숙자도
결코 이 깊은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월에도
늘 좋은 날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
太蠶 김관호님의 댓글의 댓글

과찬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