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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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인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41회 작성일 21-06-16 23:06본문
아버지
새벽은 언제나 나무숲에 걸려 있었고
아침 햇살은 뒷산을 기어오르느라 지체했다.
그는 언제나 시간을 붙잡아 매놓고
밭두렁에 앉아 아침을 깨우셨다.
혁세공의 거친 손보다 더 굵은 손마디로
벼 포기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달려드는 가난의 목을 베느라
조선 병사(兵士)처럼 용맹하게 싸우셨다.
꽉 다문 입에 고개 한번 끄떡이지 않으며
예리한 두 눈에서 발산되는 빛은
언제나 전뢰(電雷)를 방불케 하였다.
어떤 격랑(激浪)도 그의 영역을 넘지 못했고
사라 호 태풍도 그 앞에서는 잠잠했다.
화토 쪼가리의 그림을 읽을 줄 몰랐고
장담뱃대에 썬 담배를 담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가 비탈길이었지만
한 발이 미끄러져도 다른 발로 땅을 디뎠다.
등 짐이 무거워도 신음소리 한 번 없었고
진구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오뚝이처럼 신기하게 일어났다.
암울한 세월 메마른 땅을 걸었지만
뜻은 상수리나무 상순(上筍)에 걸어 놓았다.
때론 내 삶이 난곡(難曲)만큼 힘들 때면
아버지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문다.
2021.6.16
댓글목록
魔皇이강철님의 댓글
魔皇이강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가 참 좋습니다
어머님과 남동생에 대해서 써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안국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상수리나무를 보면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게 됩니다
힘들게 표고버섯 키우며
종종 수확의 기쁨과 별미의 즐거움을 주었는데...
건강 챙기시며 고운 유월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