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 바늘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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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 바늘의 정
ㅡ 이 원 문 ㅡ
어멈 오늘 뭐하니
일이 있거들랑 미루고
나 하고 바느질 좀 하자
나는 이제 눈이 어두워
바늘 귀가 안 보여
이것이 세월이고 늙음이니
아범 보고도 내가 그래더라 해
저녁 나절 풀 한 짐 베어 오라고 하고
이웃 좋다 하는게 뭐니 다 이렇게 사는거지
그리고 내년에는 그 붙이는 논 말고 더 줄께
뒷산 길 다랑이 논 너희가 붙이려무나
할에비인지 뭔지 이제 농사 짓기 싫은가보다
겉으로 돌고 잔소리만 해 쌓으니
속이 상해도 말릴 수가 없구나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도리는 해야지
내일 모레 장날 장에 간다 하니
오늘 이불 좀 꿰메고 두루마기 좀 짓자
안 할려고 해도 남들이 나를 흉봐
뭘 먹었는지 김치 국물이나 흘리고
사야 할 것도 없는데 장에 간다 하니
또 그 주막집에 미쳤나보다
글쎄 말을 하면 뭐하니 이 속 썪는 것을
언제인가 한 번은 이틀을 집에 안 들어 왔어
남이 볼 때에는 잘 사는 것 같아도 아니여
그게 아니여 이 속 썪는걸 누가 알겠니
나도 이 세월 저 세월 그 시집 살이에
아이 없다 구박도 그런 구박이 어디에 있니
식구 많어 빨래도 그렇고
부엌에서 나오지 못 하고 살었어
오죽하면 머슴애가 도망 갔나
그런 이 집에 와 그렇게 살었어
다행이 늦둥이 둘 건져 그 구박은 면했고
뒷 밭에 숨어 울기도 많이 울었지
고자질쟁이 시누 때문에 더 힘들었고
여자는 그저 손해 보는게 여자여
참아야 된다 삮혀야 하고
밤 낮 없이 계절마다 흘린 눈물이
아마 한강 물 보다 더 많이 흘렸을거다
때 되면 바쁜 일손 겨울은 안 그런가
그 빨래에 밤새도록 다듬이질에 옷 깃고 양말 꿰메고
아이는 그리 보채고 우는지 젖이 적어 밥물 찧어 먹였어
어멈아 어멈 시집 올때 어떻게나 이쁜지 나도 저런 딸을 두었으면 했는데
어멈아 너희 사는 것 내가 모르는 것 같아도 뻔히 들여다 보고 살었지
뭐 좀 주려고 해도 이 집 식구 눈치 보느라 못 주었어
너희 그 어려울 때 쌀 됫박이나 퍼 주어도 됐었을 것인데 늘 마음에 걸렸지
지금은 안 그런가 없는 것 많으니 지금도 그럴테지 뭐
인생이 별거더야 이렇게 살다 늙어 병들어 죽는 것이 인생이여
내가 암만 있어도 이웃 너의 집 의지 하고 살었어
그 공 왜 모르겠니 너희 무시하는 년덜 내가 혼내주기도 했지
아니 언제인가 너희가 짓는 논 떼라고 하길레 내가 막 야단쳤다
늘 아범에게도 고맙고 내일 처럼 그렇게 돕는 이웃이 어디에 있겠니
너의 아범 어려서 내가 데려다 밥도 많이 먹이고
치마 폭에 쌀 됫박이나 숨겨 날랐지 있는게 뭐 있어
아범 어멈 그 여편네 고생 많이 했다
유월 뻑꾹새에 가을 기러기는 왜 그리 울며 나는지
그렇게 떠난 세월이여 그렇게 보낸 세월이고
어멈아 삯 바느질이라 생각 하지 마라 내 일이라 생각해
그리고 이 바느질 끝나면 집에 갈때
쌀 좀 퍼 가려무나 몇 뒤지 가득 저거 다 먹니
다른 사람 줄 것은 없어도 너희 줄 것은 많어
또 내일 모레 장날 할에비 장에 가거들랑
그날 자루 들고 오려무나 내 쌀 두 말 퍼 줄께
내가 그것 못 주겠니 그리고 어멈도 친정 처럼 드나들어
갔다 먹을 것 있으면 반찬도 퍼 가고
이제 이 바느질 끝났고 해 저무니 어서 가거라
아이들 에미 오나 기다린다 아범도 그렇고
어서 가
어서 가거라
댓글목록
예향도지현님의 댓글

삯바느질을 해도
저런 분을 만나야 하는데
인정이 참 많으시고 배려심이 깊어
참으로 좋은 분이라 생각하니다
오늘은 현충일 휴일이니다
가신 이를 기리는 날 되시기 빕니다^^
정심 김덕성님의 댓글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오랜 가뭄이었습니다.
오늘 현충일 아침 생각지 않았던 비가
희생 된젊은이들의 눈물인양
내리는 비가 더 울적하게 하고
마음을 슬프게 하는 아침입니다.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다녀갑니다.
노정혜님의 댓글

옛날 우리엄마 생각이 납니다
옛날 여인네들의 한맺힌 삶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