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여 > 시인의 향기

기대여


잠처럼 몰려오는
혼돈의 에너지
바람이 질질 끌고 온 그 무게만큼
발끝에서 심장으로 올라온다
꼬물꿈틀 쿵쿵쾅쾅 십만 리 혈관
곳곳 헤집는 너는

유채색인 듯 무채색인 듯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듯
있는 듯 없는 듯
수억 광년 별 조각의 충격에서
은하계를 떠돌다가
빙하 속 수천 년 삼매에 젖다가
내 안에 오기까지 얼마나 진화했을까
잡아도 잡히지 않는
보려도 보이지 않는
너는

꼭꼭 묶어도 줄줄 새는
참을수록 터지는 객혈처럼
이불 덮어 쓰고 일생을 오열하듯
천길 수렁의 늪을 가진
너는

네 안에 유배된 나를 움켜쥐고
틈을 비워 내기 위하여
세탁기 안에 구겨져 들어간다
네 안에 물든
우주로 유전하던 나
불랙홀로 사라지던 나
너였던 나를
탈탈 빨아 남은 시체 한 구를
베란다 빨랫줄에 넌다
잠처럼 몰려오던
시간의 틈틈
제의식 매트릭스 같은
큐비트 햇살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