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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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 정건우
베란다 빈 화분에 싹이 났다
돌보지 않던 화초에 세차하듯이 물 뿌리다가
멈칫, 허리 숙이고 들여다보았다
돼지 꼬리 같은 어린싹이 햇살 화사한 유리창 앞에서
날벼락을 그대로 다 맞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없었던 목숨이다
한참을 바라보니 코가 찡하다
요 가녀린 것이, 우주처럼 광막한 어둠 속에서
아리아드네 실 찾듯이 밤새도록 땅속을 더듬었을 것이다
온몸을 뒤틀며 막막한 세상을 후비고
야들야들한 뿌리 사방에다 걸었을 것이다
그러다 방금, 천길만길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서
그 몰캉한 손으로 거머쥔 세상 더욱 휘감아 붙들고
죽을 힘으로 몸을 말아 버티고 버텼을 것이다
실로 장엄한 생명 창조 현장이 바로 눈앞인데
베란다에 나는 참으로 딱하다
하잘것없는 나부랭이로 아내와 싸우는 사이
이곳 땅속은 대폭발하였고 그 열기 하늘을 뒤흔들었다
불구덩이 속에 물 같은 몸 똑바로 세운
이 어마어마한 것.
댓글목록
정민기시인님의 댓글

정건우 선생님,
맛깔스러운 묘사가 곰탕처럼 진국입니다.
여러 시인분들의 본보기가 될 만합니다.
淸草배창호님의 댓글

실로 위대한 생명의 창조가
베란다에서 피었군요
가히 여기는 시인의 마음을 엿봅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자연의 힘은 위대한 힘이고
경이로움을 선사하지 싶습니다
희망찬 계묘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어지는 한파지만
새해에는 건강과 행복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