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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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 정건우
벽장을 열면 튼튼한 어둠
배내옷에 게워놓은 내 젖내가 숙성해 있고
고민 많던 청년의 눈물이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절어 있다
사랑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색 바랜 가방 같은 물건들이 숨을 쉬다니
밤 잠을 설치다 울음으로 떠났던 그때로 돌아와
이토록 가슴 아린 향기를 품다니
첨이자 마지막으로 입술 주고 떠난 여자와
이별 끝에 만져지던 손톱처럼
먼지 속에서도 번들거리는 저 표면들
가슴 세우고 깨금발로 서서
눈물 고이게 숨을 들이켜본다
미련에 떠돌다가
숨길을 타고 들어 온 콧속의 먼지들이
숨 쉴 때마다 파리하게 소스라친다
허파 속 가장 깊은 곳을 돌아 나온 벽장 공기가
보이차 같은 쿰쿰한 향내로
가여운 먼지들을 삭인다.
댓글목록
예향도지현님의 댓글

벽장의 추억은 누구나
하나쯤은 있지 싶습니다
그 오래된 공기 냄새가 나는
그 추억이 오늘따라 그립네요
오늘도 귀한 작품 감사합니다
춥다 하니 따뜻한 한주 되십시오^^
안국훈님의 댓글

예전 주택의 안방에는 커다란 벽장 하나에
꿀이며 사탕 같은 귀한 게 있어
생각나면 한 번씩 열어
달콤한 맛을 만끽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행복한 한 주 맞이하시길 빕니다~^^
淸草배창호님의 댓글

벽장이라는 낱말이
세월 때 묻은
삶의 이정표 같습니다
잊혀가는
추억의 향수를 소환해 주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설 명절,
다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민기시인님의 댓글

표현의 깊이가 깊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원문님의 댓글

네 시인님
벽장 참 오랜 그 시절의 단어인 것 같습니다
먹을 것도 숨겨 있고 찾을 것도 구석에서 먼지 쓰고 숨어 있고
컴컴한 벽장 안 시인님의 시를 읽고 추억에 젖어 봅니다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