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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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나의 그림자 / 노장로 최 홍종
숱하게 이력서와 싸우며 씨름하다 지칠 쯤에
면접 알리는 카톡 소리가
얄밉고 오히려 기괴하게 들린다.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고 띵하다
빌려 입은 정장도 벌레처럼 스멀거리고 정신을 찾아 할 말을 챙겨둔다.
처음 매어 본 개 목줄 같은 넥타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갑갑하다.
기다려 보라는 면접관의 언질에
발로 걷어차이듯 냉큼 나와 웬일로 허전하다
뭔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날씨는 잔뜩 흐려 꾸무럭거려 내가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순간을 붙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시간에 급하게 후다닥 쫓긴다.
요즘 방송 타는 택배 분류가 일이다
성질 급한 녀석들이 밀물처럼 밀어닥쳐 쏟아지는데
네모난 머리들이 뭉텅이 소리들이 데모하듯 갈 곳을 일러 달라고
외마디 소리들이 지하 창고에 쩡쩡 울려도 모른 척 냉정해야 한다.
아무래도 어리 뻥뻥 집중이 안 되어
창고의 밝은 불빛아래에 나를 세워 두고
나를 쳐다보라고 제법 엄중하게 소리쳤어요.
머리는 이미 보이지 않은지 오래고
그리고는 팔이 안 보이고
몸통이 사라지고
그런데 다리도 스멀스멀 주저앉으며 도망칠 태세이네요
아침부터 너무 골몰하여 머리를 내어주었더니
나를 붙잡지 못하고 다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내가 나도 눈치 채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걸 모르다니....
나의 그림자가 나를 탈출할 것이 분명히 보인다.
이럴 땐 도난 신고부터 해야 할까요?
댓글목록
정민기시인님의 댓글

시심이 살아 있는 시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국훈님의 댓글

요즘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휴대전화와 동거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전해지는 카톡과 문자
서로 안부 전하고 소식 전하며 산다는 건 축복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