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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건우
아침 일찍 아버지가 다녀가셨다
포항의료원 노인병동 663호실 창가에
보릿단 같은 식물 아내, 고정된 눈동자를
치매로 애처로운 아버지가 보고 가셨다
답 없는 이름 또박또박 세 번 부르고 커튼 열고 가셨다
어머니 옆에서 나는 그가 왔던 길을 다시 가본다
오늘도 아버진 횡단보도 열세 개를 만났다
어질어질한 바닥을 어서 건너라 깜박이는 저 불빛
세상 바깥 쪽 홀씨라고 그는 생각했다
세추라 사막 새벽 별로 다시 뜰 아내 손짓이라 생각했다
병상에 납작하게 깔린 질경이 같은 아내
여수 바닷가 길옆에 성하던 그 이파리를 생각했다
줄기 없이 뿌리에서 바로 퍼지던 잎자루들
바닥을 세상천지로 알고 살던 피톨들
밑동에서 와글대는 살붙이를 질끈 동여 씨를 틔우던
아내의 야윈 손가락을 떠올렸다
그녀가 광인에게 뒷머리를 맞고 쓰러지던 오 년 전
그가 외웠던 세상 이름들이 경색으로 사라지고
아내만 바닥에 홀로 심어져 메말라갔다
그녀는 이제 제 이름을 싹 틔우려 한다
너는 남기거라, 내가 간직하겠으니라는 뜻인 듯이
어디로 가서 다시 불릴 이름이 되라는 듯이
햇살을 한 아름 들여놓고 가신 것이다.
댓글목록
정민기시인님의 댓글

묘사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노장로님의 댓글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군요
표헌과 묘사가 절절합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요즘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치매 어른이 알게 모르게 제법 되지 싶습니다
갑자기 찾아와 아들도 몰라보는 사람 있고
오래 지속해도 생활에 불편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하영순님의 댓글

병원 침대가 현대 판 고려장이란걸 예전엔 미쳐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