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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에 양복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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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노장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68회 작성일 23-01-18 14:23

본문

전봇대에 양복을 걸고  /  노장로  최  홍종

 

 

 

소매가 빤질빤질한 양복은 동네어귀 이쯤인가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옷장에 얌전히 모셔 걸었건만

풀썩 땅에 내동댕이치듯 허탈하게 주저앉아

어이없게 겨우 몸을 지탱하며

웅크리고 하품하며 체념하고

팔자소관이려니 또 새우잠 신세다

뒤 굽이 달아 볼품없는 구두는 얌전히 머리맡에 두고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드시 누워

어디서 온 건지 좋은 베개가 되어 머리를 잘 받쳐 주고

벌떡 일어나 다시금 전봇대의 뒤통수에다

큰절을 넙죽 꾸벅하고 몇 번 굽실굽실 하더니 만

의심도 걱정도 다 출가시키고

발치에는 바지를 벗어 잘 포개 다독거리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편안히 잠을 청하신다.

코고는 소리가 별로 힘이 없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한가보다

큰 소리 치며 호기부리며 잘 마셨고

집사람의 원망과 발악 소리는 나중 일이고

내일 아침을 불안하게 맞을 이유가 없다.

오늘 하루면 그만이고 지금이면 다 천국이다.

낙원에서 내 육신이 편히 주무시는 데 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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