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양복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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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에 양복을 걸고 / 노장로 최 홍종
소매가 빤질빤질한 양복은 동네어귀 이쯤인가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옷장에 얌전히 모셔 걸었건만
풀썩 땅에 내동댕이치듯 허탈하게 주저앉아
어이없게 겨우 몸을 지탱하며
웅크리고 하품하며 체념하고
팔자소관이려니 또 새우잠 신세다
뒤 굽이 달아 볼품없는 구두는 얌전히 머리맡에 두고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드시 누워
어디서 온 건지 좋은 베개가 되어 머리를 잘 받쳐 주고
벌떡 일어나 다시금 전봇대의 뒤통수에다
큰절을 넙죽 꾸벅하고 몇 번 굽실굽실 하더니 만
의심도 걱정도 다 출가시키고
발치에는 바지를 벗어 잘 포개 다독거리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편안히 잠을 청하신다.
코고는 소리가 별로 힘이 없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한가보다
큰 소리 치며 호기부리며 잘 마셨고
집사람의 원망과 발악 소리는 나중 일이고
내일 아침을 불안하게 맞을 이유가 없다.
오늘 하루면 그만이고 지금이면 다 천국이다.
낙원에서 내 육신이 편히 주무시는 데 누가 ...
댓글목록
정민기시인님의 댓글

시심에 취해서
거리를 휘청거리다가
전봇대에 윗옷 걸쳐놓을 것 같습니다.
정건우님의 댓글

패러독스가 기막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