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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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터미널 / 정건우
나는 올라가고 너는 내려와서 만난 터미널에는
바람비가 내린다
대합실의 사람들 삼 분만 눈감고 몰라준다면
널 보듬고 잠시 울으리
칙칙한 대합실, 자글자글 끓던 낡은 필름이
정전처럼 끊어지고 이십오 년 뒤
응급차 왕왕 대며 다시 도는 화면 속에
흐느끼기 바로 직전의 표정으로 서 있는 너
이름 부르지 않아도 너를 어찌하랴
피부가 탄력을 잃었어도
마스카라 진하게 바르는 그 버릇을 어찌하랴
새삼스레 묻는 게 지난날이다
어떻게 살았느냐니, 뭐 그냥, 그냥
버리려고 뒤지던 서류뭉치 속 오랜 시험지에 틀린 답처럼
별것 아니라며 웃는 게 지난날이다
장난삼아 묻는데 약속도 없었던 시간이 또 흘러가서
서로 혼자 있게 됐을 때, 그땐 날 불러달라고
그리하세 이 사람아, 그게 뭐 대수냐
그때는 새벽에 와서 둘러업어 데리고 가지
쓰게 웃고 또다시 널 떠나보내는
원주터미널.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깊은 시,
흐르는 시심이 맑습니다.
노장로님의 댓글

당신의 시심은 전국을 누비고
우리의 마음에 예쁜 수를 놓고
미련도 아픔도 없이 냉큼 울음만 삼키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