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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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 정건우
아흔 되신 십오 층 할머니, 아침 미사에 늦으신지
엘리베이터 서자마자 잰걸음으로 나가신다
지우다 만 입술 루주가 왼쪽 턱까지 발그스름하다
겨드랑에 성경책은 간당간당 위태하다
잘 다녀오시라 인사하려는데
서걱대는 치맛자락 틈새에서
화장품과 지린내가 반반씩 섞인 듯한 묘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었다
뒷산에나 가볼까 해서 나섰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저렇게 화사한 한복 안쪽에 꼭꼭 숨기신 슬픔이라니
죽음마저 향기로 꾸며 놓으신 채
할머니, 종종걸음으로 가셔서
어떤 비밀을 고백하시려나
길옆에 산수유 이제 막 피어서 자욱하다
성성하던 화단 목련은 그새 지고 없다.
댓글목록
노장로님의 댓글

오래간만입니다. 꽤나 오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궁금했지요.
정건우님의 댓글의 댓글

예, 최 시인님.
새롭게 감리 일을 시작하게 되어 몹시 바빴습니다.
여전히 바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湖月님의 댓글

정건우 시인님 반갑습니다
화사한 한복 안쪽에 꼭꼭 숨기신 슬픔이라니...ㅡ
네- 어느덧 슬픔을 치마 폭에 감춘 노친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듯하네요
고해성사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