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귀신을 보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밤에 귀신을 보았다 / 유리바다이종인
무더운 날에 하도 외롭고 쓸쓸 그지없어 혼자 산책을 나갔습니다
깊은 시간이라 인적 드물고 천천히 공원 저수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목이 말라 생수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잔잔 물 위로 솟구치듯
불쑥 쳐드는 사람 머리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악 지르다가
눈을 비비며 보니 큰 물고기였어요
에이 헛것이 보이다니 나도 어지간히 쓸쓸하였구나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데 물가 큰 버들나무에서 여자가 걸어 나옵니다
속이 훤히 드러나는 하얀 망사옷 하나 걸치고 있었는데 오더군요
오래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도 외로웠어요 하며 갑자기 안기는데
순식간에 여자의 입술과 가슴 유두가 내 몸을 접착제로 바른 듯 붙었어
나의 발은 땅에서 천천히 떠오르며 빙빙 돌기 시작했지
하나 여자의 몸이 얼음처럼 차갑고 입술을 통해 나도 차가워지더라
가슴팍을 밀쳐내며 내가 말하기를
너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로구나 살아있는 사람의 몸은 얼음이 아니다 하니
여자가 휘리릭 물러나며 허공 중에 몸을 고정시키고는
젠장마즐 들키고 말았네 들키고 말았어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단다
저수지에서 혼자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정신 차리자 청신 차려야 해
오늘따라 왜 사람 하나 없을까요 참 쓸쓸하다 쓸쓸하다
집으로 가야지 가고 있는데
물가 벤치에 누가 하얀 옷을 입고 앉아 나를 보며 애타게 부르는데
13년 전 85세로 떠난 어머님이 아닌가
아들아, 네가 장성하여 천지를 살펴보며 詩를 쓰는 시인이 되었구나
미안하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키우지 못했으니 나를 용서해 다오
아들아, 내 옆에 와서 앉아 보거라 너에게 할 얘기가 많구나
아아 가거라 내게서 떠나라 귀신들아 나는 속지 않는다
깊은 밤에 잔잔한 저수지 물 위로 달빛만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댓글목록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선생님들 무더위에 땀이라도 좀 식힙시다
안국훈님의 댓글

예전에는 여름이면 빠짐 없이
방송사마다 납량특집이 반송되곤 했는데
이어지는 폭염과 무더위에 잠시나마 위안이 됩니다
어느새 내일이면 입추 그리고 잠시 후엔 말복
이 도한 지나가는 불청객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