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면 나는 항상 꼴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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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하면 나는 항상 꼴찌였다 / 유리바다이종인
탕! 소리가 울리자 모두 달리기 시작했다
불과 100미터,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나는 이미 결승점을 지나치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나의 과거여, 세월이여,
푸른 하늘에 번개가 쳤는지 심판관 하나가 넋이 나간 듯
나의 그림자를 쫓아오고 있다
두 다리로 뛰지 않고 앉아서 뛰는 나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의 과거는 탕감되었고 다만 오늘의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먼저 가세요, 먼저 가세요
양보하다 보면 달리는 자가 나를 돌아보며 비웃는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을 앞질러가는 내가 있다
달리기는 나의 특기다 그래서 달리는 법(法)을 깨닫는 것이다
마치 끈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즐거움에 빠져
달리는 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는 것이다
아버지, 나의 삶은 항상 꼴찌였어요
이제 나에게 이 땅의 지구는 너무 작아요
무한 은하계 물결을 타고 달리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엔 천사들과 한번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아뇨, 제가 어찌 감히 천사들을 앞서 갈 수 있겠어요
나는 맨 뒤에서 달려가며 천사들의 아름다운
그 빛나는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행복합니다
아버지, 너무 오래 달리기를 했나 봐요
저녁노을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지고 있습니다
이젠 지팡이를 꺼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가야겠어요
아버지 고마워요, 오늘도 저랑 함께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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