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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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건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3-10-12 10:29본문
상강 무렵 / 정건우
이십구 년 전 열아홉 평 아파트를 사서
십오 년 살다 세놓고, 평수 넓혀 시내로 나갔습니다
달포 전, 아홉 번째 세입자가 갑자기 떠나
다시 세놓을 참에 청소나 할까 해서 계단을 오르다
오층에서 무릎을 허물었습니다
뒤틀린 거실 창 힘줘 젖힐 땐 늑막이 쑤셨습니다
오래된 갱지 냄새가,
뭉글하게 폐를 뒤집고는 창문을 여는 손등을 타고
찬찬히 빠져나갔습니다
작년에 접질린 발목 올해 또 다치듯이
아파트 귀퉁이가 그새 더 많이 상했습니다
구석구석 훔치다가,
신발장 모서리에 박힌 종잇조각을 발견했습니다
번창繁昌이라고 쓰인, 아아, 아버지 필쳅니다
물걸레 내려놓고 잠시 앉았습니다
불콰한 얼굴 처음 내시던 집들이 땝니다
틈새를 챙겨야 해, 사람도 집도 거기부터 상해
오금까지 부은 다릴 베개에 얹고, 모로 누워서
벽에 대고 그러시더니
언제 신발장에 가셨다는 건지 도통 모를 일입니다
창문 몇 개 두드려 닫고
방금 가신 양반 배웅을 나왔는데 날이 저물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로 오셨던 그날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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