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싸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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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싸움 일기
- 박종영-
오월 첫날, 밥풀 같은 웃음을 달고
탱글탱글한 탱자꽃이 날 가시 웃음을 앞세워 으스댄다
봄볕이 가시에 찔려 빛의 길을 닦는다
오죽이나 가기 싫은 봄바람이었으면
저리 뾰쪽하게 머뭇거릴까
생 가시울타리 너머에서 후닥닥 소리 들릴 때마다
뽀얀 먼지가 풀썩거린다
가만히 살펴보니 칼 발 앞세워 붉은 볏 낚아채는
우리 집 수탉과 옆집 수탉의 사랑싸움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보는 진정한 닭싸움이다
그 옆에는 암탉 한 마리 두려운 눈치로 비켜서서 조바심이다
아마 마음에 두는 승자를 점치는 것일까
어느 때쯤 투쟁의 시간이 지나고
승리의 홰를 치는 소리 듣고 뒤뚱대며 달려온
다른 집 암탉이 비겁하게 궁둥이를 들이대며
꼬꼬고 짝짓기 울음으로 승자의 깃털을 빗질한다
패배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 집 수탉을 안고 돌아오는 길
내가 수탉의 날개에 쌓여있는 낡은 세월을 그대로 둔 것이 후회다
언제나 상대의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은
헛된 세상을 살아온 징표이거늘 다만,
패전의 이유를 내 게으른 훈련 탓으로 돌리고 찢긴 볏을 어루만져 준다
흘러내리는 검붉은 분노가 단단하게 조여오고
닭똥 같은 눈물 훔치며 콕콕 손등을 쪼아대는
우리 집 수탉의 분노를 위로하며
슬그머니 오월의 파란 하늘을 가져와 눈물에 섞는다.
탱자꽃 피는 오월에 다시 읽는 詩
<2024. 5. 5. 퇴고>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오월 첫날, 밥풀 같은 웃음을 달고"있습니다.
안국훈님의 댓글

자체적으로 계란을 먹기 위해 닭은 키우다 보면
수탉의 치열한 싸움을 보게 되지만
거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암탉을 보호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행복한 5월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