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詩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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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詩 사이에서 / 유리바다이종인
저녁노을이 참하게 퍼져가고 있다
아우님, 장맛비가 내리기 전에 조용히 나를 따라오게
그의 손에 든 비닐봉지에 유리병이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한참을 따라가니 전설의 고향 같은 연못이 나온다
여기는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곳이네
일단 한잔하세
형님 이런 곳이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늙어갈수록 보는 눈 많으니 조용한 곳이 때로 필요하였네
2,800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자네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말 벗 하나 없이 떠날 뻔하였네
형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팔순의 백발 위에 잠시 물고기들이 뛰어올랐고
노을이 실루엣처럼 약속을 남기며 떠나고 있었다
사실 알다시피 나는 무연고자 독거노인일세
자식들은 수십 년째 연락조차 없었고 찾을 수도 없네
잔이 비었구먼, 술 한 잔 받게
혹 내가 떠나거든 연못가에서 내게 술 한 잔 가득 부어 주게
내 장례식비는 내가 직접 결재하도록 몰래 모아두었네
형님, 무슨 그런 쓸쓸한 얘기를 하십니까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그의 얼굴 아래로
황소개구리 소리가 술잔 속에 뛰어들고 있었다
형님, 외롭지 않은 인생 얼마나 될까요 저야 뭐,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산 소망이 있어 사는 게지요
글쎄 앞으론 종교 얘기 더는 하지 말아 주게
그저 아우님 같은 사람이 이웃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네
그의 눈이 연못처럼 젖고 있다
댓글목록
향일화님의 댓글

살아가면서 때로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지요
알고보면 씁씁하지 않는 인생이 없더라구요
크고 작은 아픔의 차이일 뿐~
쉬운 생을 살았다는 사람을
저도 만나지 못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