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魔의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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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魔의 경계선에서 / 유리바다이종인
질투가 강한 자는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고 만다
낮은 강에서 헤엄치는 자는
스스로 못 생겼음을 알기 때문에 건너가는 거다
질투가 강한 자는 남이 잘 되는 것을 그냥 두지 않는다
제 욕심의 심술이지
무슨 술수를 부리고야 만다
태고 이후 질투로 인해 좋은 결말 한 번이라도 있었나
오직 창조주 한분만 거룩한 질투가 존재할 뿐이다
인생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바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 중에
어부가 못 생긴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는 다시 바다에 던진다는 말씀도 있다
댓글목록
하영순님의 댓글

마의 경계선에 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피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욕심과 질투는 다 버리고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
나는 분명하게 땅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들어 세상을 향해
시대가 발전하니
이 땅에는 예전의 재래식 도적보다 첨단을 달리는 도적이 더 들끓고 있다 했더니
어느 누군가 듣고나서 "맞습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이러는지... 하더군요
알고보니
그 말을 한 사람은 진짜 도적이었습니다
세상이란 게 그래요
하여 저는 자신의 글처럼이나 댓글 답글도 상대에 맞게 필요하겠고
공감되는 부분이나 감흥이 전해지지 않으면 그냥 말없이 지나가기도 하지요
아니면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인사말로 대신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어느 30대 후반의 독자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시인님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도 작가 지망생입니다
매번 올라오는 글을 유심히 봅니다만
무어라 댓글이나 답글을 못하겠습니다 이 점 이해하여 주세요
한가지 이상한 점은
시인님의 글작 내용에 잎사귀만 따다가 성의없이 땜빵질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분들도 시인 맞는지요
나는 말해 주었습니다
내 글에 개인적으로 비난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네
암튼 관심의 모습이며 그로서 인사말이라면 족하다
유리바다이종인님의 댓글

※
자 그럼 해체작업을 시작해 볼까요.
큰 어선에서 참치를 잡아 밑창에 냉동된 고기를 하역장에 내리자 경매를 거쳐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옵니다.
상인들은 각자 정해진 양으로 가져갑니다.
유명 식당에서 전문 셰프가 해체작업을 시작합니다.
먼저 절단기로 참치를 가로 반토막 내고요, 부분별로 나누지요.
냉동의 참치는 바윗돌처럼 차갑고 무게가 단단합니다.
※
화자는 왜 [마魔의 경계선에서] 라는 시제를 정하며 내용을 전개시켰을까요.
글의 타이틀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제 하나만으로도 50점은 따고 들어갑니다.
내용은 좋은데 제목이 아니라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왜 화자는 첫마디에 '질투가 강한 자는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고 만다'고 했을까요?
사람 질투의 근원은 본질상 자기 욕심 때문에 기인합니다.
사랑이 없지요. 미움 시기 죽임, 모든 것이 이에 속한다 보면 됩니다.
반면 낮은 강에서 헤엄치는 자는 늘 겸손함으로서 자기의 잘남을 자랑치 않습니다
그러나 질투가 강한 자는 자기 스스로는 알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최고라 여기며 착각의 생을 살지요.
해서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도우려 하기 보다 넘어뜨리고 심지어 죽이고 싶어하지요.
그래야 자기 잘남 외에는 아무도 근접치 못하게 하기 위해.
어쩌면 이 시대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해서 화자는 탄식하며 말하게 됩니다.
아.. 시대가 갈수록 사람이 거듭나지 못하고 오히려 예 시대보다 더 악하구나!
오히려 미디어 발달로 도적이 더욱 두뇌 과학화 되고 첨단화 되었구나!
그런데,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욕심과 질투로 얼룩진 존재들의 결말은 어찌되어 왔습니까?
이는 지구상의 모든 역사 교훈을 통해서 그대들이 익히 배우고 알고 있는 바가 아닙니까.
화자는 경서에 기록된 과거의 율법까지 들먹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 하였음을!
내가 댓글창 지면을 통해 설명 풀어헤치자면 날밤을 새어도 다 하지 못하므로 하여 간략합니다.
마지막 연, 결어에
못생긴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두 존재가 나타나는데요.
내가 임의로 지어낸 얘기 아니올시다.
성경을 한번 찾아보세요. 내 말이 아니라 그대들이 잘 아는 이름, 예수가 한 말이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세상을 바다 같다 하고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바다의 물고기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지요.
각종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그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며,
어부는 하나님이 보낸 목자를 뜻합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그 형제들을 부를 때 예수가 한 말씀 기억하십니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것만 보아도 바다의 물고기는 사람을 비유한 뜻이 맞지요.
창세기 에덴동산 한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나무 역시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 소속과 마귀 소속의 두 존재를 말합니다.
생명나무와 만국을 무너뜨린 세상 비진리 음행의 포도주는 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우리가 자식과 어린아이 하나를 보더라도 창차 큰 나무가 되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생명나무와 비진리 선악과 나무는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신도 마귀의 신도 이 땅에 사람의 육체를 들어 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못생긴 물고기는 왜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는 세상 바다에 다시 내던져 버린다 했느냐,
이는 나의 시에서 찬찬히 그 뜻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얘기가 더 길어짐으로 하여 이만 맺음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나는 편향된 종교적인 내용으로 글을 주장하지 않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인생이며 삶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실체를 알고 똘똘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