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미각을 잃어버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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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미각을 잃어버린 날 / 유리바다이종인
오랜 세월 병이 잦았다
어린 아들이 귓속에서 고름이 나오든지
이빨이 다 썩어 뿌리까지 내려앉든지
비염으로 콧물이 줄줄 새 든지, 병원에 한번 가보질 못했다
아버지는 새벽 늦도록 동네 주막에서 한 많은 이 세상 노래를 불렀고
엄마는 물건을 다 팔고 늦은 저녁
머리에 빈 다라이를 내려놓자마자 잠이든 자식들을 위해 밥을 지었다
나는 나중에 청각 후각 미각이 둔해졌다
누가 물으면
아 음식맛이 참 좋습니다
아 냄새가 너무 좋습니다
아 음악소리가 가슴을 후벼 팝니다
이제는 진짜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영(靈)으로 알아채는 몸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고 듣고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영의 세계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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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건우님의 댓글

아버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이의 역설로 들리네요.
치매를 심하게 앓으시면서도 맛있다, 냄새 좋다, 보기 좋다를 연발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