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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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와 할머니
박의용
고추를 보면
남자의 일생이 보인다
예전부터 고추는 대접받고 태어났다
정성스레 심은 고추모가 자라
하얀 고추꽃이 피면
할머니는 건실한 고추를 기원했다
그 기원 덕에 내가 태어났고
온 동네 자랑거리였다
꽃이 지고
그 앙증맞은 고추가 열리면
할머니는 날마다 고추를 쓰다듬으며
자랑스러워 했다
때론 따서 고추장 찍어 드셨고
때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의기양양 자랑도 하셨다
그럴 때면 아주머니들도
몇 개씩 따다 된장 찍어 드시곤 했다
고놈 참 자알 생겼다
오뉴월부터 팔월의 땡볕에도
고추는 무럭무럭 자라
가을이 되어 붉게 익어가니
참 보기에 좋았더라
따서 요소비료 푸대에 *바리바리 담아서
마당에 멍석깔고 펼쳐 널어
가을 햇살에 말리니
누워서 보는 가을 하늘엔
뭉게구름 새털구름 떠 있고
하늘을 가로지른 빨래줄 *바지랑대엔
고추보다 붉은 고추잠자리가 앉아 졸고 있고
참 보기 좋았더라
평화롭고 정다워라
한여름 땡볕도 견디며 자랐는데
이따위 가을볕이야 *껌이지
비록 쭈굴쭈굴 주름이 늘어도
난 보람을 느꼈지
참 잘 살아왔다
검붉은 주름진 몸
비록 바싹 마른 몸이지만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 때론 갈리고 부셔져서
가루가 된들
그리하여 무우 배추와 어울려
다른 생을 살아간들
그저 나는 좋아라
그게 나의 보람이니
저 하늘 별이 되신 할머니도
빙그레 웃고 계실거야
참 잘 된 일이야
참 보기 좋아
오늘 문득
할머니가 그리워
밤하늘을 쳐다본다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빙그레 웃고 있다
눈물이 핑그르 돈다
이게 인생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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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바리 : 짐이나 꾸러미가 많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바지랑대 : 빨랫줄을 받치는 장대
*껌이지: 아주 쉽다는 뜻.
영어권의 a piece of cake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 먹기가 있다.
It's so easy to me.
It means 'It's a piece of cake.'
It is kind of slang, not polite and formal.
댓글목록
노정혜님의 댓글

기도 덕은 높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기도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저는 우리엄마가 백집 동냥을 해서 부처님에
공양미 올려 백일 기도 해 낳았습니다
기도 부처님전에 닿지 않아 딸로 태어났습니다
딸로 태어난 죄가 얼마나 큰지
태어난 날로 부터 고생의 어린시절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 여자가 우대 받는 세상이 오리라 생각이나 했습니다
시대에 감사하며 오늘에 삽니다
우리모두 건강하셔 행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지비님의 댓글의 댓글

부모님 정성과 공양으로
자식은 태어나는 것이니
귀하고도 귀했던 지난 시절....
자꾸만 바뀌어 가는 세태가
아쉽기만 합니다.
귀하신 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