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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문정영 / 비타민 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9,830회 작성일 18-01-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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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으로 문정영 시인을 모십니다

문정영 시인은 1997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계간 시산맥 발행인으로

우리나라 시단 발전을 위하여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등이 있습니다.

문정영 시인의 품격있는 시와 함께 희망찬 새해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


비타민

     

   문정영

    

너는 내게 엷은 햇빛 조각 같은 것 

떼어서 먹는 구름과자 같은 것


나비 날개보다 더 펄럭이는 신발을 신고 네가 오던 날

날개를 펼친 신발에 발을 꽉 집어넣고 제자리걸음하던 날

  

네 신발에 갈 새의 오른쪽 심장을 그려 넣고 싶었다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묻지는 않겠다

    

너를 신고 내가 날면 숨 쉬다가 가끔씩 멈추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까

    

가벼운 연애는 농담 같은 것

작지만 가볍지 않은 너를 물에 녹여 마시면 발성연습처럼 생소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느 순간 몇 겹의 붉고 깊은 목구멍을 들여다보는 슬픈 너를 비타민이라 읽고 있었다

    

우리가 날고 싶은 저녁이 오기나 할까

    

 

 

 

銳角예각

    

     문정영

 

  

  밤새 위층에서는 각 싸움이 있었다

  몸으로 말로 틀린 각을 잡고 있었다

  너는 조금씩 벌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어떤 발자국은 울음이 가 닿지 못한 곳까지 아주 멀리 나갔다가 왔다

  그때,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손을 잡으며, 각을 좁혔었는데

 

   불안은 서로에게 밑줄 친 글들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생기는 것

    

  불안해서 개를 키워 본 적이 있니,

  그때 개는 너의 반대편에서 평안해지지

  손을 놓아버리기 전에 이미 차가워진 손바닥

    

  그런데 그때 몰랐던 손등이 있었던 것이야,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겨울의 손을 맞잡고 있었던 것이야

    

  한 칼끝이 다른 칼끝을 날카롭게 찌르듯

  눈물은 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야





스머프

 

   문정영

 


작은 버섯구름 위에서 처음 만났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구름 발자국이 생겨났어

붉은 모자 하나와 흰 모자 여러 개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당신이 손을 가리키면 내 얼굴이 파래졌지

 

내가 당신에게 물들어갈 때, 거기 물들어갈 당신이 없을 때

천천히 가는 내 발자국 소리에 길이 물들어 가고 있네

 

나 아직 모자라서, 내 눈물 스스로 닦을 수 없는데

저 뜨거운 강을 어떻게 건너가야 하나요

 

어떤 이의 발목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내 가슴에서 흘러요

지난 계절에 갈라진 버섯의 내부를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거기

섬세하게 붉은 시간이 박혀 있는데,

내 등에 비치는 불빛을 클럽 모나코라 불러도 우리 결코 모나코에

가 본 적은 없지

그 후로 나는 스머프라 불린 적 없어, 내 안에서 버섯구름이 사라진 그 순간부터

 

 


 

복도


   문정영

 


좁고 어두운 통로에 나무가 있었다

발가락으로 걷는 잎사귀들, 귀로 바람 소리를 듣는 너는 그 순간 나무가 아니었다 뜨거웠다, 내가 옆에 없는 데도 타들어 갔다

내 몸에서 네가 어둠을 듣고 있을 때

의문을 물고 있던 가지가 툭 떨어졌다

바람도 없었다

그게 헤어질 이유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발가락을 얼마나 꽉 웅크리고 있었던가

누군가를 생각하며 자꾸 수음을 했다

하루의 모서리가 아팠다

날벌레들이 어두운 쪽에서 기어나왔다

천장이 낮고 긴 통로에 내가 있었다

달빛 닿은 곳이 이제 아프지 않다고 했다

구석을 밟으면 그늘이 파삭거렸다

저녁이면 햇볕자국에서 파 냄새가 났다

나 없는 동안 복도는 햇볕을 버리고 있었다

 





알고리즘, 이별


    문정영

 

눈에서 흐르나 눈물이 슬픈 것만은 아니다

숨소리에서 긷는

간절한 기도가 먼저 아파온다

이별의 첫발은 언제나 불면에서 시작되는 것

나는 젖어 있으나 더는 울 수 없어

한 편의 시를 품고 계절을 견디는데

아무런 발자국 없는 행간은 잊힌 애인 같다

지면에 게재된 사랑은 다 어디로 스며든 것일까

내가 걷는 미로의 향방을 물을 때

그 길에서 맞닥뜨리는 약속들, 불편한 진실이 된다

오늘 나와 헤어지는 꽃들이 내일은 향기를 품을까

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데

둘이 하나가 아닐 때

우리는 어떤 꽃술을 이별의 수식어로 매달고 있을까




넷플릭스

 

   문정영

 

 

꽃을 꽃으로만 보던 절기가 지났다

 

계절이 꽃보다 더 선명하게 붉었다

 

그때 당신은 열리는 시기를 놓치고,


나는 떨어지는 얼굴을 놓쳤다

 

되돌려볼 수 있는 사랑은 흔한 인형 같아서

 

멀어진 뒤에는 새로운 채널에 가입해야만 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당신은 귀하지 않았다

 

공유했던 풍경은 채널 뒤로 사라져 갔다

 

어느 날에는 두근거림이 달아나 버렸다

 

나는 캄캄한 시간을 스크린에 띄우고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사랑을 자막처럼 읽는 시절이 왔다

 

눈에 잡히지 않은 오래전 사람처럼 자꾸 시간을 겉돌았다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당신은 생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보고 있었다

 

느슨해진 목소리가 사랑을 끝내고 있었다

 

툭 툭 우리는 같은 의자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중이었다

 

 

 

바닥들


   ​문정영


물은 백만 개의 손바닥이 있지

물방개가 물의 손등을 살짝 깨무는 순간 색이 번지지

연꽃의 뿌리가 바닥에 가라앉아야

물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이 보이지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 눈을 뜨면

떴다가 감은 눈동자를 가릴 수 있는 손바닥은 없지

비 그치고 물이 움찔거리듯

하나의 표정은 만 번을 스쳐 생긴 흔적이라서

그가 떠나고 그녀에게 백만 개의 얼굴이 생겨났다는데

그녀는 몸의 바닥을 보기 위해 걷고 또 걷지

돌아오는 길엔

억만 개로 번진 슬픈 손바닥이 따라오지

 




아스피린

 

 

   문정영 

 

 

  둘러보니 썩은 서어나무 속이다

  내가 잎이었는지, 잎의 언저리에 피는 헛꿈이었는지

  불우한 생각이 각설탕 태우는 냄새 같은

    

  기억 같은 건 믿지 말라, 그 말을 새가 물고 있는 동안 네가 내 안에 멈추어 있었는지

  비어 있었는지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이 나에게 묻는다

    

  눈발 날리는 날

  서어나무 발자국은 길 가운데 멈추고, 서쪽 뿌리에서 어떤 처연한 결기가 걸어나온다

    

  수첩에 적어 둔 계절은 느리게도 오지 않는다

  눈 감아도 네가 내 안에서 눈에 덮여 있는 저녁은 갈까마귀 목덜미 빛이다

    

  아침에 먹는 아스피린으로 내 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 너에게 가다보면 나는 조막만 해진 밀랍인형이 될 것이다

  결국, 이란 허공의 말이 천천히 지혈되고 있었다

 

   

 

무가지

    

    문정영

     

 

수없는 활자들이 매달린 감나무의 잎맥들은

겨울로 들기 전에 읽어야한다

그때 가지들은 자신이 새긴 여름을 펼치고

행간을 좁히거나 문맥을 정리하는 중이다

무가지는 가지를 달고 있으나 가벼워서

매단 느낌이 없다

그 빈 가지들마저 읽고 나면 훨씬 내 어깨가 가벼워진다

살아갈수록 무성해지는 가지들은 잘라야만

빛을 뿌리까지 흡수할 수 있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감나무는 산감나무보다 먼저 잎을 떨군다

간신히 홍시를 매달고 있는 우듬지는

새들의 눈에 먼저 읽힌다

고욤나무에 감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날도

공기가 가벼운 날을 택한다

   

전철입구에서 나누어주는 무가지도 읽으면 가볍다

  

  

 

 

오지다

  

     문정영

     

 

  오지다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이제사 깊게 들린다 어릴 적 내 고추가 조금만 능청거려도, 조금만 밥을 잘 먹어도 오지다고 하시던, 할머니 크게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것이 오지다는 말 이 지상에 다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 텃밭의 풀들이 자라 봉분처럼 둥그스름해져 감나무의 밑동을 휘감을 때도 저것들 오지게 잘도 자라네, 가만히 그 자라는 모습 지켜보시던, 그것이 이 땅에 나서 다시 가는 날들인 것처럼, 언젠가는 시들시들해질 일 년생 풀들인 것을 아는 것처럼 오지다는 말 누누이 나누어주고 가신 할머니, 오늘 내가 오지다고 내 아이들의 등 두드려주어도 아이들 무덤덤한 표정 짓는 것은, 내 오지다는 말 속에는 무성한 풀 속에 서 있던 감나무의 은근함이 부족한 탓은 아닌지, 할머니의 오지다라는 말 다시 들어보고 싶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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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현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양현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정영 선생님...ㅎㅎ
여기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언제 읽어도 좋은시,
선생님의 시는 겨울 난로 같습니다, 시편들이 따뜻해서 몸이 녹는 것 같네요

향일화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정영 시인님 반갑습니다
독자들에게 좋은 감성을 일깨워주는
비타민 같은 좋은 시 감사합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정영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귀한 시 맛있게 읽겠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8년
반가운 일 많으시고 건강하세요.

대왕암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정영 시인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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