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 / 문어숙회 먹는 밤 외 9편 > 이달의 시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이달의 시인

  • HOME
  • 문학가 산책
  • 이달의 시인
    (관리자 전용)
☞ 舊. 이달의 시인
 
☆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최광임 / 문어숙회 먹는 밤 외 9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9,899회 작성일 18-03-05 15:19

본문

3월의 초대시인으로 최광임 시인님을 모십니다


최광임 시인은 2002시문학으로 등단하여 그동안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도요새 요리,

디카시 해설집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를 각각 출간한 바 있습니다.

현재 계간시와경계부주간,디카시주간,두원공과대학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꾸준한 시작업을 통하여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최광임 시인의 시와 함께 아름다운 봄을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

문어숙회 먹는 밤 9편 /  최광임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카멜레온형 인재가 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문어숙회를 사이에 두고 도란거린다

또 한 번의 봄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중이고

여자가 맥주에 소주를 만다

넘치지 않게 술 따르는 법은 용케도 익힌듯하나

생이란 게 변변치 못해 팔팔한 적 없어,

서로에게 숙회감도 되지 못하였으나

귀는 순하여 참도 잘 들어 준다

한참만에야 문어 한 점 입에 넣다가

사람이나 문어나 사는 게 애옥살이라는 듯

혼자서는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세상이라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행간에 노후가 펄럭인다

여자와 남자가 합쳐야 고작 팔완목이겠으나

여덟 개의 다리로도 육지로 끌려나온 돌문어

가난을 합쳐본들 늙음뿐이 더 늘겠는가마는,

함께 일할 생각 없냐고 묻는 남자 앞에서

같이 살자는 말로 해석해 버릴까

늙은 여자 더딘 계산을 하는 밤이다

 

 


 

마흔아홉을 지나며

    

 

나 이제부터 당신에 대한 호칭을 바꾸려네

시기 질투 빠진 여자를 성님이라 부르고

식물성 남자를 오라버니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네

 

생이란 황량한 벌판을 가로 지르다

온 듯 간 듯 스치며 저무는 게 한살이라면,

간밤의 서늘한 기온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삶이 어디 그런가, 가다 보면

햇살과 바람과 소낙비 같이 천지간 유일해서

피붙이 같은 이름 지어 부르고 싶기도 하는 것인데

 

참 많은 초록이 지쳐가고 뒷굽 닳듯 몸 헐거워진

추수절이 되어서야, 여자를 벗어버린 성님 몇과

남자보다 더 귀한 오라버니 몇

소출로 삼으면 넉넉하다 싶어지는 것이네

 

더는 채워지지 않을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서

성님 풀피리 불고 오라버니 상두 돌리며

또 한 생애 건너자는 것이네

 

 

 

 

늦은 사랑 창평에서 한철


 

창평 장날 면에 나간다,

두부 한 모 막걸리 한 병 사고

약방 지나 미장원 옆 쌀집에 들러

아저씨, 3kg만 주세요

봉지쌀을 팔아 거처로 돌아오는 저녁,

근래 봉지쌀을 팔어가는 사람들이 많네라

쌀집 아저씨 말에 쿵 내려앉는 가슴

첩첩산 골짜기 어디쯤 빈집에 살림 차리고 싶은

내 맘 콕 찔린 것도 같아

짐짓 경기 탓이라는 듯

피식 웃어넘기고 돌아 나오는 길

이 마을 어딘가에 나보다 먼저 살림 차린

늦은 사랑이 있을지도 몰라

부러움이 앞서왔던 것인데

 

지난 번 장에 나와 붉은 냄비를 사고

가난한 사랑 끓여줄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고

라면 몇 봉지와 인스턴트 반찬 몇 가지와

이 집에 들러 봉지쌀을 팔아갔을지 몰라

날이 풀리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뙈기밭이라도 얻어 경작할 농작물을 궁리하고

가끔은 면소재지 국밥집에 들러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 암뽕순대를 시켜

백아산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온 밤이 있었을 거야

그들의 사랑은 누룩처럼 발효되고

빈가에 고소한 냄새 진동했을 거야

마을의 개들 밤새 짖어댔을 거야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산이 먼저 문 닫아 걸고 길을 내어주지 않는 산골

내 사랑도 그 산기슭 어디쯤에 자물쇠를 채우고

누룩 띄워 막걸리를 담고

붉은 냄비에 밥물이 넘칠 때

냄비 닮은 엉덩이의 여자가 되어도 좋을

꿈꾸는 한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개 같은 사랑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꺽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큼큼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내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간의 생을 더듬어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 꾸었다

 

 


도요새 요리

 

 

세상은 온통 흐르는 것들이다

교묘와 수법을 진실처럼 가장하고

강물은 흐른다는 것만을 강변하는 당신

나는 강물도 바위틈에 둥지 튼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당신은 강물처럼 흐르고, 나의 조상도

흐르고 흐르던 유목민이었다 전생의,

나는 멕시코만 근처 요리를 잘하는 여자였을 것이다

여우비가 내리면 푸른 초원을 찾아 떠나는 아버지 따라

나는 오래도록 달밤을 걸었으며

별 총총한 물가에 잠시 항아리를 내려놓고 머물던 일들이며

정갈하게 씻은 부드러운 내 목을 기억한다

나는 앉은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맹렬하나 밀림을 내달리던 치타나 기린의 슬픔을 아는 탓이다

 

오랜 유목 생활은 세상을 향한 더듬이만 발달하여

교묘와 수법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알게 하였다

당신과 또 하나의 당신이 강물과 진실 사이의 내밀함을 계산하는 일이나

두 마음 사이 교묘하게 거리를 정하는

당신의 전생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저명한 산술가였을 것이다

내가 강 하구에서 잡아온 도요새를 요리하고 있을 때에도

저 여자 몇 분 후면 새의 깃털을 벗길 것이며

내장을 꺼내 이글이글 불 위에 얹을 것인지

당신이 흘리는 군침의 분량은 몇의 숫자에

해당하는지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수법보다 먼저 감각의 답을 빼들고

요리를 한다, 식단에 적혀 있는 메뉴에는

도요새 요리에 필요한 양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후추랄지 산초랄지 산 짐승의 시큼함을 없애기 위해

초원의 아버지로부터 배워온 양념을 골고루 넣는 대신

전설에도 드문 진실이란 양념을 즐겨 사용한다

거북해진 당신은 짐짓 시치미 떼며 강물로 돌아가면 그뿐

 

오랜 유목에 지친 도요새 무리는

진실의 처마에 깃들기 위해 오늘도 한 대륙을 횡단하다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을 당신은 모른다

 

 

 

 

담쟁이


     

이제 나는 더 이상 벽이 아니다

내 살 속 뿌리를 내리고 키돋움하며 오르는 일

처음엔 나의 알맞은 집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달그락거리는 뼈만 모여 살던 삶

떡잎의 네 사다리가 되어도 좋을 듯했다 옆에는

흐드러진 능소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났다는 것이다

다족류의 곤충처럼 셀 수 없는 네 손길은

갈비뼈를 어루만지며 살을 붙이기도 하고

뼈와 뼈를 맞추기도 하고 살과 뼈 사이

아귀틀림을 다듬기도 하며 나를 지워갔다

미처 허공에 줄을 긋지 못한 거미들이

너와 나 사이를 지나쳐 가기도 하였으나

벌레들이 네 몸을 뒤집어 집을 짓고

얼크러진 꿈들을 채우는 일 보며

나 없이 너의 뼈가 되어 살아도 좋았다

삶은 언제나 목마르다 계절풍처럼

일정하게 떠나기도 하지만 이내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 길 지워지지 않도록

검게 야윈 금들을 붙잡은 축원

끝나고도 식지 않는 사랑이다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부끄러워 몰래갔다

이슥한 어둠 탓도 있었지만 바다는 묵묵했다

활어보다 싱싱했던 한때 지나, 까막까막

몇 채 안 되는 외등 켜고

폐경기 맞은 여인처럼 주름져 있었다

 

 속살 여리디여린 곳 갈라 뭍을 들이고

굴삭기, 덤프트럭에 만신창이 된 제 상처 핥으며

자꾸자꾸 어둠을 끌어다 덮는 바다다

부려놓은 인연, 몸 깊숙이 근 박아둔 채

풋것 주렁주렁 달고

목놓아 먹일 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 되어

백주 대낮이 부끄러운 나다

 

 가끔 진저리치듯 진눈깨비 몰아가고

바다와 나,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짠물에 종기 우려내면 그제서야 낮이 아프지 않을라나

아버지 닮은 누군가 지금도 술을 어둠처럼 마시며

이 거리 저 거리 상한 비늘로 날릴 것인데

바닷가 윗뜸, 이제 술기운 가신 채 누워 계실 아버지

맑은 무덤에도 진눈깨비는 내릴 것이었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무덤가 아버지 축축이 젖은 손 뻗어

내 시린 눈 어루어주고 있었다

멀리서 희끄무레하게 흰 파도 밀리다 말다,

바다와 나

불게

몸 들이고 있었다

 

 



 

목련꽃 진다

    

아름다운 것이 서러운 것인 줄 봄밤에 안다

미루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

흔들어 대던 낮바람을 기억한다

위로 솟거나 아래로 고꾸라지지만 않을 뿐

바이킹처럼 완급하게 흔들리던 둥지

그것이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라고

의지 밖에서 흔들어대는 너

내 몸에 피어나던 목련꽃잎 뚝뚝 뜯어내며

기어이 바람으로 남을 채비를 한다

너는 언제나 취중에 있고

너는 언제나 상처에 열을 지피는 내 종기다

한때 이 밤, 꽃이 벙그는 소리에도 사랑을 하고

꽃이 지는 소리에도 사랑을 했었다

서러울 것도 없는 젊음의 맨몸이 서러웠고

간간이 구멍 난 콘돔처럼 불안해서 더욱 사랑했다

목련나무는 잎을 밀어 올리며 꽃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이 밤도 둥지는 여전히 위태롭고

더욱 슬퍼서 찬란한 밤 또 어디서

꽃잎 벙그는 소리 스르르,

붉은 낙관처럼

너는 또 종기에 근을 박고 바람으로 불어간다

꽃 진다, 내가 한고비

진다

    

 


 

인어 


 

모계의 일가가 댐인 곳이 있다

여자 남자 구분 없이 그곳에서는 모두 물이고 그녀이다

나는 능선까지 올라선 그녀 종아리에 매달린 물비늘이다

속내 깊숙한 그녀 뿌리의 하나다

한 번 떠나온 이는 그곳을 향해 고개도 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는 것을 알지만 그녀 생의 근간은 대처로 나온 나임을 안다

차를 몰아 대청댐 한 바퀴 휘휘 돌아오는 날이 잦다

흐린 날일수록 도로까지 기어올라 기다리는 그녀에게 가기 위함이다

어둠에 수몰된 모계의 내력이 무던해질 즈음

나는 내 생의 근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어였을지 모를 슬픔의 어머니를 품고 오는 날

전설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름 뒤에 숨은 것들

    

 

그러니까 너와의 만남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헤어짐에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오래 전 떠나온 이승의 유목민

오던 길 가던 길로 그냥 가면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와 나 들꽃이 되는 것이다

달이 부푼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가면

구절초밭 꽃잎들 제 스스로 삭이는 밤은 또 얼마나 깊은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서로 묻지 않으며

다만 그곳에 났으므로 그곳에 있을 뿐,

가벼운 짐은 먼 길을 간다

내가 한 계절 끝머리에 핀 꽃이었다면

너 또한 그 모퉁이 핀 꽃이었거늘

그러므로 제목 없음은 다행한 일이다

사람만이 제목을 붙이고 제목을 쓰고, 죽음 직전까지

제목 안에서 필사적이다

꽃은 달이 기우는 이유를 묻지 않고

달은 꽃이 지는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제목들처럼 집요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밤이 휘영청 서러운 까닭을 알겠는가

꽃대궁마다 꽃 피고 꽃 지고, 수런수런

밤을 건너는 지금 

 

   

  ================= 

 

최광임

전북 부안 출생

2002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도요새 요리. 디카시 해설집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대전문학상 수상

 2016EBS국어수능교재 이름 뒤에 숨은 것들수록

 2018년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출처로 수록

 현재 계간 시와경계부주간,  디카시주간, 두원공과대학 겸임교수



추천0

댓글목록

향일화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광임 시인님 안녕하세요
언어의 꽃을 피워내고 싶은 봄날에
좋은 시를 만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노트24님의 댓글

profile_image 노트2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 반갑습니다^^

부족하지만 영상시방에
눈물의 배후/최광임
영상시 올렸습니다

멋진 시 감사합니다()

대왕암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광임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Total 28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