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초대시인] 유종인 시인 > 이달의 시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이달의 시인

  • HOME
  • 문학가 산책
  • 이달의 시인
    (관리자 전용)
☞ 舊. 이달의 시인
 
☆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3월의 초대시인] 유종인 시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582회 작성일 19-03-01 23:58

본문

3월의 초대시인으로 유종인 시인님을 모십니다.

유종인 시인은 1996년《문예중앙》시부문과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된 바 있으며,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등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종인 시인의 작품과 함께 아름다운 3월을 여시기 바랍니다.



================ 

 

      

정신 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외 10/ 유종인


 


가상이 내 몸에 알을 스는 밤, 이다
먼 기억엔 따뜻한 정신 병원에 쓸쓸함으로 갇혔던
누이가 있다. 그때 그녀는 정신 분열증이었으나
나는 정신 미분열증으로 고생하던 청춘, 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 한다 모든
病名이 있는 입원은 행복하다 갇혀서
따뜻할 수 있는 자들의 夢幻
구름처럼 떠다니다 낮잠에 빠지는 사람들 속에
어린 꽃잎 같은 소녀가 남몰래 내 몸에 편지를 숨겼다
문득 내 몸은 붉은 우체통이 되었다, 집에
전화 연락 한번 해달라 부탁한 그 쪽지엔
탈출보다 극심한 폐쇄의 속살이 얼비쳤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온갖 것들의 세상, 그곳으로부터
아무런 편지 없을 때, 나는
오지랖 좁은 들을 쓰며 그대 병동의 밤을
가끔 떠올린다. 이곳은 아직 수용되지 않았을 뿐
증세를 다 호명할 수 없어 그냥 놔둔 露天병원!
따뜻한 간호사가 필요하다, 아직
꽃나무들, 먼 새들과 함께 어떤 증세로든 살아있어
무릇 야릇한 소음과 정적으로 희망적이다

누이가 앓고 있는 만큼 소녀가 꿈꾸는 세상만큼
세상의 얼굴은 더 늙어 보이고, 늙어서 고치는 것은
목숨을 다치는 일뿐, 누군가 아직도 식물의 맘으로
동물의 상처를 앓고 있다

 

 

      

 

 

 

팝콘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꽃,

꽃은 열매 속에도 있다

 

단단한 씨앗들

뜨거움을 벗어버리려고

속을 밖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

창문 깨고 투신하듯

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

꽃이다

 

뜨거움을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속을 뒤집었다, 밖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꽃은

견딜수 없는 嘔吐

 

나는 꽃을 집어먹었다

 

     

 

 

         

 

 

눈과 개

 

 

 

눈이 오는데

나에겐 개가 없다

 

함박눈이 오는데 풀어줄 개가 없는 건

세상에

눈물이 비치는 外道가 없다는 거다

 

풀어준 쇠사슬은 시멘트바닥에 쩍쩍 얼어붙어도

소나무가 이리저리 허리를 뒤트는

지구 저편 언덕까지 돌다오라

 

눈밭에 가면

개야, 개야, 개야, 개 아닌 게 없는 개야

오종종 오종종 개발자국 꽃밭이 한창이다

 

개 하나로 성스러운 개야

함박눈 허공에 앞발을 높이 쳐드는

神命 하나만은 혁명인 개야

네 몸 속의 심장사상충마저 기뻐 날뛰는 개야

 

함박눈이 오는데

개를 풀어주는 건

사랑의 들판이 어디까지인가 꼬리쳐 헤매라는 것

 

눈 온 날 천지가 新婚인 개야

모든 인간의 악담을 대신 받아 모신

눈이 오면 인간의 굴레가 풀리고

오직 너 하나만 살린, 오로지 개 하나뿐인 개야

 

     

 

 

 

 

신발 베개

 

 

1

 

다리가 아팠다

숲길에는

버력돌이 닳고 닳은 이마를 보여주어도,

나는 한 숨 고요의 丹靑 같은

낮잠을 얻기로,

 

걸어온, 신발 밑창을 서로 대면하듯 맞붙여 베고는

귀에 걸리는

냄새의 野史를 열 개의 발가락보다 더

많이 귓바퀴에 걸어보는 것인데

 

 

2

 

멀리

당신이,

아주 머얼리 가신다 했을 때

그 신발들을

나는 蛇足인냥 그러모아 태웠으니

 

어머니발가락 냄새

아버지발꼬락 냄새

당신, 발바닥에 어린 내 발바닥 맞춰보며 웃던 일

있었는가 몰라도

 

풀밭 지나 너덜 지나

신발을 베고 누우면

뒷목에 차오르는

먼저 간 신발들의

낮은 말소리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를 보다

 

 


버드나무는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
치렁치렁한 줄기 가지로 옅은 바람을 탄다
흰 말이 곁에 있었지만
수양인지 능수인지 모를 버들은 말을 건드리지 않는다

말은 예민한 짐승, 잘못 건드리면
주인도 태우지 않고 먼 들판으로 달아난다
거기서 말의 고삐와 안장은
들꽃들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
이 흰말에 죽은 말벗을 태우려 했나니 이 흰
말의 잔등에 앉아 영원을 달리려 했더니

버드나무는 고삐도 없이 수백 년 한자리에 묶이고
잠시 매인 흰 말은 무료한 투레질로
오월 허공에 뜬 버들잎에 허연 침버캐를 묻힌다
가만히 버들가지가 말의 허리를 쓸어준다
흰 말은 치뜬 눈동자가 고요해지며 제 눈의 호수에
버들잎 몇 개를 띄어준다 눈이 없는
버드나무는 말의 항문을 잎 끝으로 간질이자, 말은
()이 안 든 허공에 뒷발질을 먹인다 허공은 죄가 없으므로
멍이 들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주인이 오지 않는 흰 말과 버드나무
사이에 능수(能手)와 능란(能爛)의 연리지(連理枝) 고삐 끈이 늘어진다
버드나무는 오히려 짐승처럼 징그럽고
흰 말은 꽃 핀 오두막처럼 고요하다
친연(親緣)의 한나절이 주인을 빼먹은 일로 갸륵하다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공재 윤두서의 그림.보물.

 

 

      

      

 

 

 

창경(鶬鶊)

 

 

 

봄볕이 좋아
영혼의 내장까지 환히 비춰질 거 같네
거기 전생을 밟고 온
징검돌에 이끼가 파르라니 돋아서
이젠 머리를 괴고
낮잠을 다독이는 석침(石枕)으로 쓰려는데
봄볕이 좋아
꾀꼬리 소리가 맴도네
슬픔까지는 너무 처지고
웃음까지는 너무 날래서
그냥 한 꾸러미 명랑이 날개를 달았다 싶네
그것도 샛노란 판본(板本)을 하고
나온 저 허공의 생색(生色)이려니
겨우내
군동내 나는 허공이 엉덩이로 지긋이 뭉개고
주니가 든 앙가슴으로 얼러 내놓은
샛노란 명랑이려니 싶네
봄볕이 좋아

 

 

 

 

 

      

 

 

이끼 2

 

 

 

그대가 오는 것도 한 그늘이라고 했다

그늘 속에

꽃도 열매도 늦춘 걸음은

그늘의 한 축이라 했다

 

늦춘 걸음은 그늘을 맛보며 오래 번지는 중이라 했다

 

번진다는 말이 가슴에 슬었다

번지는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옛날이 아직도 머뭇거리며 번지고 있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랑의 옛말,

여직도 청맹과니의 손처럼 그늘을 더듬어

번지고 있다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옷을 아직 입어보지 않은

축축한 옛말이지만

 

 

 

 

     

      

파초(芭蕉) 숲으로 가다

 

 

 

1.

파초 숲에 가니

지난밤 비바람에 꺾인 파초 잎이 배를 깔았다

 

나는 먹물을 대령하고

쥐수염붓을 바랑에서 꺼냈다

 

어머니 당신 이름을 써 보니

빗방울이 모여 파초 잎맥을 따라 눈물처럼 구른다

파초에 새로 오신 당신,

오늘 생신이라고 나는 축 자를 밥상처럼 납작하게 쓴다

 

어머니 앞에서 고민은 장난 같다

초록 옷에 검게 머리를 물들이고 오신 어머니,

그 말씀 그 눈빛이 슬프고 수려하니

이게 살아 있는 신령인가

 

2.

나보다 앞서간 숨탄것들 이름을 써 보듯

, 이 붓을 남기려 수염을 보탠 쥐들의 이름도

생쥐부터 시궁쥐까지 바람 냄새 가득한 들쥐도 함께

떡잎 같은 쥐의 귀까지 그리듯 써 본다

 

그대를 떠올릴 때는

그 눈을 바로 그릴 수 없어 눈썹을

버들눈썹의 고요한 그늘을 가만히 흘려 본다

그러면 그대 눈이 고요히 나를 눈부처로 담으리

 

곁을 따라온 개가 내 파초 잎 낙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령칙한 전생을 떠올리듯 심각하게 또 물끄러미 바라보니

나는 오동잎 지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라고 쓰고

개의 왼발을 먹물에 담가 낙관(落款)하니

개는 어리둥절한다

 

가끔 물초가 된 가마우지 소리를 흘려 쓰면

파초 잎에 물비린내가 번진다

 

어느 날 산기슭에서 데려온 돌의 이마를 쓰니

파초에 그늘이 드리우는 듯

그러나 먼 우레 소리로 돌의 등짝을 밀어내니 가붓하다

그래도 뭔가 섭섭한가

사랑을 다 짓지 못한 저 섬 같은 돌은

부처님 머리 육계(肉髻) 같아서 이를 어쩐다

 

3.

다시 물어보고 싶은 사람들

다시 캐 보고 싶은 비밀들

마음은 다 살고도 남고 다 지나오고도 남는 파도 소리 같은 거

파초 잎에 아직 들키지 않은 소낙비 소리가 잔귀 먹어 남은 거

그런 미련 같은 거 가만히 받자하는 파초 잎

쥐수염붓이 망설이는 것

그건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설렘 같은 것

 

전생으로부터 흘러온 당신이란 끌림 같은 거

포개듯 파초 잎에 쓰고 써 보니 까만 점이 되는 것

그것이 당신 눈동자라는 걸 아는 것

 

그러나 파초 잎에 듣는 비꽃들

나보다 먼저 물초가 되는 글자들

검은 눈물로 파초 잎을 떠나는 이여

파초 잎은 아마도 샛강에 가려는가

옴두꺼비 두 마리 싣고 신행길 보내 주러 가고 싶은가

여우비보다 먼저 쥐수염붓을 걷고

나는 파초 우산을 쓰고 강으로 왼 어깨가 젖어 가고 싶은가

 

 

 

 

    

 

 

 

솔방울이 거미줄에 걸리듯

 

 

솔방울 하나가 거미줄에 걸리듯

덩치보다 가벼운 행보,

허공에 한 번 맺혀 볼 만한

또 다른 미련이

또한 열매라서

 

자신을 버리러 가다가

도리어 자신을 얻는

, 저 호젓한 얽매임

 

무당거미는 저 솔방울이 또한 큰 난제라서

배고픔 속에 막막한 관망,

저 골칫거리를 땅으로 내리면

거기 솔방울만한 허방,

구멍 숭숭한 비탄을 이끌고 가는 거지

 

이 가을에 솔방울만한 얽매임으로

가을 거미도 솔방울도 입이 없는 식구,

가을이 물려주는 단식의 바람을 쐬다

, 하고

솔가리와 갈잎 위로 몸을 던지면

거미와 솔방울이 한통속이다

 

솔방울이 거미줄에 걸리듯

못 먹을 것들이 던져 주는 한 생각,

이제 생을 갈아타야 할 우주의 가을,

쓸쓸하니 달달한 생각의 침 고여 오듯

 

 

 

    

 

 

 

 

교우록

 

 

눈이 내렸다

어둠 속에서

말 못할 것들이 흩날렸다

내리는 눈은

친구가 아니라서

바닥에 쌓이거나

행인의 발길에 밟힐 것이다

 

내리는 눈 속에서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문밖에 나와 있다

 

호랑이 한 마리 나타나 울부짖으면

내린 눈들이 화들짝 놀라

하늘 속으로 눈 내리러

다시 올라갈 것만 같았다

 

친구는, 내려오는 친구는

저렇게 하얗고 속절없이 많아도

다 내가 더럽혀야 할 눈이었다

 

내리지 않는 눈이

가장 순수한, 착한 눈이었다

친구는

죽은 친구가,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다

 

이미 치워진 눈과

치워진 눈 위에 밤을 세워 내리는 눈과

이미 눈 녹은 물로 내 신발을 적시는 눈과

눈을 뭉치며 달아나는 친구의 뒤통수에 정확히 박히는 눈과

말없이 뒤란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눈과 함께

친구는, 죽은 친구가 제일 착한 친구였다

 



 

 

 

저수지에 빠진 의자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 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 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 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 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 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을 데려와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시부문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 겠다』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등




 


추천0

댓글목록

양현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양현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종인 선생님 여기에서 뵙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
좋은시 잘 읽고 갑니다
잘 지내시지요?

봄 안부 놓아 둡니다

Total 21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top@hanmail.net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