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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 겨울 들판을 거닐며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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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180회 작성일 23-05-06 20:55

본문

이달의 초대시인으로 허형만 시인을 모십니다.

허형만 시인은 1973년 월간문학(), 1978년 아동문예(동시)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국립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국제 3대 인명사전인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된 바

있습니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 속에 쭈그려앉아』  『供草』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  『첫차』  『눈먼 사랑』  『그늘이라는 말』  『불타는 얼음』  『가벼운 빗방울』  『황홀』  『四人詩集』  『바람칼』 『음성』 『만났다』  시선집 새벽따뜻한 그리움내 몸이 화살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판시선집 그늘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뒷굽그리고 중국어 시집 許炯万詩賞析과 일본어 시집 

수필집 오매 달이 뜨는구나평론집 및 연구서 시와 역사인식』 『우리 시와 종교사상』 『영랑 김윤식 연구』 『문병란 시 연구』 『오늘의 젊은 시인 읽기』 『박용철 전집-시집 주해』 『시문학 1-3호 주해』 『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등이 있습니다.


편운문학상한국예술상한국시인협회상영랑시문학상펜문학상윤동주문학상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허형만 시인의 가슴 따뜻한 시편들과 함께 아름다운 5월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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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들판을 거닐며 9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혼의 눈


      허형만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허형만



파도를 보면

내 안에 불이 붙는다.

내 쓸쓸함에 기대어

알몸으로 부딪치며 으깨지며

망망대해

하이얗게 눈물꽃 이워내는

파도를 보면

, 우리네 삶이란

눈물처럼 따뜻한 희망인 것을.

 


 

사랑론


      허형만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슬플 때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행복할 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사랑이란 비어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 오늘도 저물녘 창가에 앉아 새 별을 기다리는 사람아. 새 별이 반짝이면 조용히 꿈꾸는 사람아.

 

 


을 닦으며

   -공초供草 14

 

      허형만



새로이 이사를 와서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흑갈빛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지나온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을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물랐다

나는,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을 보았다

비늘처럼 총총히 돋혀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 그것은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

그리 살아온

마흔 세 해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노을 앞에서 바람 앞에서

철없이 울먹였던 뽀오얀 사랑까지

바로 내 영혼 깊숙이

칙칙하게 녹이 되어 슬어 있음을 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허형만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버지

 

     허형만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찬 바람 온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샌 후

 

얘야 문 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뒷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1의 아침

 

     허형만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한 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아직은 햇살도 떨리는 1월의 아침

뜨락의 풀뿌리는 찬바람에 숨을 죽이고

저 푸른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그리웁고

사람이 그리울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우리네 겨울의 가슴,

 

나처럼 가난한 자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깨끗해진 두 눈으로

신앙 같은 무등이나 마주하지만

나보다 가난한 자는

오히려 이 아침 하느님을 만나보겠구나.

 

오늘은 무등산 허리에 눈빛이 고와

춘설차 새 잎 돋는 소리로

귀가 시린 1월의 아침,

 

우리의 기인 기다림은 끝나리라.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땅도 풀리고

꽃잎 뜨는 강물도 새로이 흐르리라.

우리의 풀잎은 풀잎끼리 서로 볼을 부비리라.

 

아아차고도 깨끗한 바람이 분다.

무등산은 한결 가즉해 보이고

한 줄기 사랑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다.

 

 


가랑잎처럼 가벼운

 

     허형만 



숲길 누리장나무 아래

검정 상복을 입은 개미들이

참매미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이미 여름은 끝났는데

한순간의 작렬했던 외침은

지금쯤 어느 골짜기를 흘러가고 있을까

오후 여섯 시햇살이 서서히 자리를 뜨는 시간

부전나비 한 마리

누구 상인가 하고 잠시 기웃거리다 떠나가고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지리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숲을 끌고 가는 개미들의 행렬

숲은 가랑잎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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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許炯萬시인

 

1945년 전남 순천 출생중앙대 국문과 졸업국립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교육대학원장 역임중국 옌타이대학 명예교수 역임국제 3대 인명사전인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현재 국립목포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

1973년 월간문학(), 1978년 아동문예(동시등단.

시집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 속에 쭈그려앉아』 『供草』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 『첫차』 『눈먼 사랑』 『그늘이라는 말』 『불타는 얼음』 『가벼운 빗방울』 『황홀』 『四人詩集』 『바람칼』 『음성』 『만났다

시선집 새벽따뜻한 그리움내 몸이 화살있으라 하신 자리에

활판시선집 그늘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뒷굽그리고 중국어 시집 許炯万詩賞析과 일본어 시집 

수필집 오매 달이 뜨는구나.

평론집 및 연구서 시와 역사인식』 『우리 시와 종교사상』 『영랑 김윤식 연구』 『문병란 시 연구』 『오늘의 젊은 시인 읽기』 『박용철 전집-시집 주해』 『시문학 1-3호 주해』 『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수상 편운문학상한국예술상한국시인협회상영랑시문학상펜문학상윤동주문학상공초문학상 등 수상. 


 

추천2

댓글목록

하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
안녕하세요
두근두근
시와영상방에
가벼운 빗방울/ 허형만
영상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마음을 다 한다고 했지만
모처럼 작업하다 보니 ...
마음에 드셨음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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