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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남 시인을 이달의 초대시인으로 모십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148회 작성일 23-08-01 15:53

본문


   이달의 초대시인으로 정수남 시인을 모십니다. 정수남 시인은 1984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접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작품집으로 분실시대

 『별은 한낮에 빛나지 않는다』 『타성의 새』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시계탑이 있는 풍경

 『길에서, 길을 보다』 『앉지 못하는 새등이 있음, 장편소설로 행복아파트 사람들

시집으로 병상일기, , 지금 어디 있니?산문집으로 시 한 잔의 추억(1)(2)와 

어린이 글짓기 공부책으로 소설가 정수남 선생과 함께 떠나는 365일 글짓기여행(1)(2)가 

있습니다

자유문학상·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는 일산문학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수남 시인의 시와 함께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

 

근성

 

   정수남

 

 

6층 옥상 시멘트 바닥

약지보다 작은 틈새에

지난봄부터 어디선가 날아와 뿌리를 내린

후우,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름 모를 잡초 하나

 

여름날 가뭄에도 말라 죽지 않고

장대비 속에서도 끄떡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가을이 되자 하얀 꽃까지 피우는

내 어린 날 어머니를 닮은 풀

 

삼팔선을 넘어와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 땅이 되었다는 소식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앉은 곳이 자기 자리인 양

길바닥에 양담배 몇 갑 늘어놓고

온종일 꼼짝하지 않던 남대문 시장통의 어머니 

 

쇳소리 풀풀 나는 평안도 사투리 뱉어내며

합동 단속에도 끄떡하지 않고 지키고 앉은

아들 넷을 보듬고 엄동설한을 버티던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여 솔가한 뒤에도 떠난 적 없는

 

내년에도 봄이 오면 다시 청청하게 살아날 게 틀림없는

이름 모를 잡초 하나

 

 

 

 

증거 불충분

 

   정수남

 

 

첫째 외삼촌은 52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둘째 외삼촌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막내 외삼촌은 미국에서 위암을 앓다가 이 땅에 와서 눈을 감았다.

 

형님은 대장암으로 18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 둘째 아들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암으로 3년 전 죽었다.

 

나는 18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3/4 절제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자신이 있다.

 

 

 

 

옛날이야기

 

   정수남

 

 

  보이니?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사 형제. 허름한 입성을 걸치고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거리고 있지?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니? 그 뒤에 선 부모님도 웃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지? 요 쬐그만 막내 삼촌만 빼놓고 모두 까까머리인 것을 보면 육십오 년 전 너희 큰할아버지의 고등학교 입학식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이 분명하구나. 가난 속에서도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는지, 그땐 집안에 맑은 웃음소리가 늘 가득하였지.

 

  양푼으로 밥을 먹고도 배가 늘 허전하여 매달아 놓은 양미리 한 줄을 밤새 몰래 연탄불에 다 구워 먹었다가 네 증조할아버지한테 혼이 났던 시절이었단다. 앞집 감나무의 감을 죄다 따서 쌀독에 숨겨놓았다가 쌀까지 못 먹게 되었던 적도 있었지.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매를 들어도 그때뿐, 다음 날이면 또 여전히 말썽을 부리던 사 형제들이었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다다미방 머리맡에 떠 놓은 자리끼가 꽁꽁 얼어붙던 후암동 시절.

 

  그러나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제 남은 사람은 단 둘뿐이구나. 티 없이 깔깔거리던 그들의 웃음소리를 이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조금도 슬프지 않단다. 왜 그런 줄 아니? 너희가 곁에 있기 때문이지. 그 시절의 사 형제를 쏙 빼닮은 너희의 맑은 웃음소리가.

 

 

 

 

 

엑스트라

 

   정수남

 

 

오늘도 나는 죽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아침부터 무능하다는 아내의 잔소리가

부자가 미워서 모두 죽이고 싶었다는 살인범이

돈이 되지 않는 알량한 시가

 

할부금과 대출금 이자가

세금 고지서가

수강을 그만두겠다는 한 아이 엄마의 일방적인 통고가

마모되어 실밥을 보이기 시작한 자동차의 뒷타이어가

만 원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주머니가

 

나를 죽인다

 

이젠 누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죽을 줄 안다

죽어야 할 시간이 감지되면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먼저 허리를 꺾고 쓰러지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그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나이 칠십이 넘어서야 겨우 터득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죽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무제

 

   정수남

 

 

  며칠 만에 집에 다녀온 아내가 몇 장의 세금 고지서를 들고 온다날 세운 종이 위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숫자……아내의 한숨이 밀물이 된다솨아아아……갯벌에 물이 들어온다그때까지 제 세상인 양 말랑말랑한 고랑에서 뜀박질하던 짱뚱어 한 마리가 얼른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긴다귀를 막는다.

 

  전기요금 28,460

  수도요금 14,210

  가스요금 5,800

  통신료 47,250

 

  물이 밀려갔으나 짱뚱어는 그래도 구멍에서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한 달에 한 번씩 짱뚱어는 그렇게 자기 구멍에 숨어서 운다.

 

 


 


 

동행

 

   정수남

 

 

   날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걷습니다우리 곁에는 늘 당신이 있고당신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습니다당신이 있는 까닭에 이 세상을 헤쳐 나갈 때에도 우리는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우리는 되도록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기를 소원하지만 당신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한눈을 팔며 잠시 당신을 잊기라도 할라치면 당신은 곧장 우리의 시선을 돌려놓습니다어둠 같은 검푸른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줍니다세상을 이겨보고자 발버둥 칠 적에도 당신은 우리를 붙들어 다시 제자리에 앉힙니다시간을 쥐고 있는 당신은 우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지배합니다.

 

  아당신의 이름은 죽음입니다.

 

  

 

 

아버지

 

   정수남

 

 

  거랑말코 같은 세상……아버지는 손을 씻으셨다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으시며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말씀을 되뇌곤 하셨다섭섭할 때나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는 더 많이 씻으셨다거랑말코 같은 세상거랑말코 같은 세상……작은고모가 시집에서 쫓겨 왔을 적에도추석날 혼자 외롭게 낚시를 가시면서도어머니와 다툴 적에도 아버지는 늘 그랬다피난 내려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그렇게 손을 씻으며 살다 가셨다.

 

  왜 아버지는 그렇게 손을 씻고 또 씻으셨을까.

  무엇이 역겨워서 늘 거랑말코 같다고 세상을 비아냥거렸을까.

 

  나이 칠십이 넘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도 모르게 손을 씻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놀란다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도성경을 읽다가도나는 내 손에서 문득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아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손을 씻곤 한다씻고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고 또 씻는다거랑말코 같은 세상

 

  아아버지.

  아버지가 그립다.

  거랑말코 같은 세상.

 

 

 

 

 

경계선

 

   정수남

 

 

  문상객들이 끼리끼리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밤이 이슥해지자 눈자위가 풀린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늦게 온 문상객이 그들과 합석하자 술잔이 또 빠르게 돌아간다떠나간 사람은 사람이고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면서 상주까지 끌어들인다향 타는 냄새가 매캐한 한편에서는 여자들의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육두문자가 오간다이윽고 여자들의 남자들이 가세한다.

 

  그래도 영정 속의 고인은 나서지 못한다.

 

 

 

 

행복

 

   정수남

 

 

칠순이 넘은 아내가 사과를 까고 있는 옆에 앉아서 성경을 읽는다.

 

할인점 세일 코너에서 한 개에 천 원 주고 사 왔다는 사과가 달다.

 

초저녁에 사위가 식수를 갖다주었고큰아들의 안부 전화가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금촌 수로

 

   정수남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낚시가방을 메고 나섰던 금촌 수로는 천년 묵은 용이 죽어 자빠진 것처럼 구불구불 누워 있었어금촌역에서 내리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썩은 배미 회 공장까지 터벅터벅 걸어가셨지한 시간 남짓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황톳길을 걸어 도착하면 나는 그만 지쳐서 대를 펼치기도 전에 물부터 찾곤 했다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걱정스럽다는 투로 혀끝을 차곤 하셨지사나새끼가 기레 약해빠져개지구 어데다 쓰간.

 

  65년이 지난 지금은 내 큰아들이 그 곁에서 물비린내를 맡으며 살고 있어후곡마을 주공아파트 6단지날마다 그 키를 더해가는 아파트의 무게에 눌려 비쩍 말라가는 수로 곁에서 그가 오늘은 아침부터 토종붕어 같은 자기 아들을 꾸짖으며 혀를 차대고 있어그때 그 시절 내 나이와 같은 손자 아이를 울리고 있는 거야도대체 넌 누굴 닮았길래 그렇게 약해빠졌니남자아이가 그렇게 약해빠져서 앞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래?

 

================

평양 출생국학대학 국문과 졸업,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접목이 당선되어 등단작품집으로 분실시대』 『별은 한낮에 빛나지 않는다』 『타성의 새』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시계탑이 있는 풍경』 『길에서길을 보다』 『앉지 못하는 새』 등이 있음장편소설로 행복아파트 사람들시집으로 병상일기지금 어디 있니?』 산문집으로 시 한 잔의 추억(1)(2)와 어린이 글짓기 공부책으로 소설가 정수남 선생과 함께 떠나는 365일 글짓기여행(1)(2)가 있음자유문학상·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현재는 일산문학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있음한국작가회의한국문인협회국제PEN클럽 한국본부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한국소설가협회 감사와 창작21작가회 상임고문과 한솔문학 고문고양작가회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음.

 

추천3

댓글목록

하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행/정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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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축복받으시고 큰 복 받으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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