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진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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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진수미
이곳은 사유지. 네가 읽어버린 건 뭐니? 사유는 사유하다의 사유이고 누군가 두더지처럼 땅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이름을 꽝꽝 말뚝 박고 간다. 당신이 밟고 있는 땅의 주인을 아십니까? 이 땅이 그들 것이라면 공기에도 이름이 새겨졌겠지
등기소에 기입된 성명은 국가의 이름으로 권위를 누린다. 사유는 사유하다의 사유이고 국유의 반대말이다. 그들의 것, 국가의 것, 그래서 달라지는 게 뭐지?
국가가 공인한 변호사가 나타나 소송 기일을 통보한다. 관공서에서 발급받은 서류가 쌓인다. 법의 언어로 말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언어의 현실적 규정력을 인정해. 네 말은 앞뒤가 맞지 않고 불투명한 지시들로 가득해. 그래서 어쩌라고?
차고에서 목을 매다 실패한 아버지는 이혼 후 어린 딸 셋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 어머니가 오열한다. 아이들은 당신 것이 아니야. 나는 당신 것이 아니야. 국가와 아버지의 이름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있다. 모두 나의 땅을 밟았잖아. 나의 성을 가졌잖아...... 사유는 사유하다의 사유이고 생각과 무관하지만 공포와는 가깝다
*<뼈아픈 진실(Home Truth)>(카디아 맥과이어, 에이프릴 헤이즈, 2017)
문학동네시인선 226 진수미 시집 고양이가 키보드를 밟고 지나간 뒤 016p
얼띤 드립 한 잔
지금 잠시 머무르고 있는 이곳은 사유지인 듯 사유지다. 하지만 이 땅은 공기에 나와 있잖아, 세상에 공포한 이름, 그 밑에서 진실은 무엇인지 조합과 변수는 차질이 없도록 길을 잘 닦아 놓았는지 확인할 뿐이다. 두더지처럼 그대의 밭을 들쑤시며 뒤집고 다닌들 지면이 솟을까마는 나는 분명 땅의 주인을 알고 잠시 살아 있으매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까 내 갈 곳을 향해 무탈한 여행만 기원할 따름이다. 그대의 성이 잠시 등기소에 기재되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어차피 세상은 고발과 이에 대한 대처만 있을 뿐이고 사전에 준비한 자만이 조금 더 생명력을 가지겠지. 어디 다 둘러 보아도 제대로 된 틀에 박혀 사는 자 어디 있던가! 어디든 어느 곳 불법이 난무하고 무식한 재량에 개량만 따르다가 줄줄 흐르는 돈줄에 안심하고 사는 인간, 솔직히 난 최소한 고소나 고발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불법이었고 어, 여긴 개량이라는 것쯤은 알고 사니까, 하지만 내가 이룬 것에 돈줄이 막히고 밥줄이 무거워 힘겨울 땐 다른 관로를 찾는 게 좀 안타까울 뿐이지만 어차피 세상은 도전하는 자만의 것이고 보다 활동적인 것만이 삶이 주어져 있던 게 아니었던가, 안주라는 말 하하 술 한 잔 탁! 치면서 그냥 웃고 만다. 그건 죽음과 이꼬르니까!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는 게 좀 더 쉽고 정착 또한 쉽다는 것 한술 뜨는 밥뿐만 아니라 비참한 종말까지는 기대하지는 않지만, 혹여 자력이 부족하여 똥 기저귀 누가 갈거든 부끄러움은 없어야겠다. 정말 힘내어 다시 목줄 한 번 볼끈 쥐어 본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멋지게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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