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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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 박연준
지나치게 묽어지는 새벽을 걱정했다
빨래를 하다
양손이 서로에게 달려들고 있다는 생각
이미 밀봉된 꿈속에서
치통을 앓는 아버지가
등허리를 고치처럼 말고 우는 소리
눈물은 위를 향하는 법이 없다
머리칼의 질량으로 아픔을 견디어보세요
당신은 이미 시간을 다 썼는걸요
가끔 절망한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혼자 사진을 찍었다
(시감상)
여명의 시간이 오면 어둠도 빛의 절벽으로 투신하는 것처럼 계절과 계절 사이, 환절의 물녁이 오면 숙환처럼 감기를 앓기 일쑤였다. 환절은 나의 의지가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을까. 겨울을 견딘 나무들이 팝콘처럼 봄꽃을 틔우듯 환절은 겨울숲을 견뎌낸 다람쥐의 얼어붙은 손톱자국이었다. 내가 견뎌내야만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피멍 든 물녁이다. 희망은 환절이라는 바닥에 엎드려 나지막이 속삭이는 신의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 비로소 눈물처럼 온다는 것을 혼자 찍은 사진 속에 거울처럼 얼굴을 들이민다.
(시인프로필)
순하게 빛나는 것들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바보 이반’을 좋아한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 산문집 『소란』, 『쓰는 기분』, 『고요한 포옹』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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