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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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시감상)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지만 이 세상 모든 가족의 죽음은 새털처럼 야윈 가슴속 광중에서 심장처럼 오늘도 뛰고 있을 것이다. 외동이던 사촌 태식이가 있었다. 숙모는 태식이가 어릴 적 돌아가시고 자라면서 태식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식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버지는 억새처럼 사위로 부들부들 흔들리다가 결국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 모든 것을 장승처럼 침묵으로 지켜보시던 선친의 심장은 그 당시 얼마나 비대해졌을까. 숨조차 쉬기 어려웠을 그날의 선친을 생각하며 싹이 오른 감자처럼 호흡곤란의 날들을 시의 행간에 비춰본다
(시인프로필)
1986년생, 세종대 국어국문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2017년 창비 신인시인상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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