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꽃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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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 / 이정록
똥 같은 인생이야.
자신을 팽개치지 마라.
잔 받아라.
새똥이 떨어진 자리마다
환하게, 산벚꽃이 피었구나.
곧 어두워지리라.
호들갑 떨지 마라.
잔 들어라.
낮달은 제자리에서 밝아진다.
달무리, 산벚꽃이 피었구나.
(시감상)
산벚이 피는 계절, 봄은 할머니의 모시적삼처럼 희고 환하다. 환하다고 하는 것은 무한 긍정이 아닐까. 그래서 봄은 희망의 계절이요 청춘을 봄에 비유한다. 철 지난 가로수를 바라보면 꽃은 괴나리봇짐을 메고 먼 길 떠나고 푸른 잎만 백발처럼 가득하다. 산도를 벗어난 우리들도 천국이 아닌 꽃 진 생의 밑바닥을 붙잡고 구르다가 사라질 것이다. 서쪽하늘이 온몸을 살라야 일몰이 오듯 그것은 슬픔이 아니므로 호들갑 떨지 마라. 낮달이 제자리에서 밝아지듯 산마루 응달에 매달려 있는 꽃봉오리가 더욱 오래 환하게 웃는다. 산벚향 짙은 봄날 오후다.
(시인프로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림책 『똥방패』 『달팽이 학교』 『황소바람』 『나무 고아원』 『아니야!』 『어서 오세요 만리장성입니다』,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지구의 맛』, 청소년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동화책 『십 원짜리 똥탑』 『미술왕』 『대단한 단추들』 『아들과 아버지』,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그럴 때가 있다』 등을 썼습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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