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파눌라 =남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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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파눌라
=남지은
내가 시집 한 권을 읽고
작은 개가 낮잠 자는 사이
어떤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떨어진다
시간이란 참 묘하구나 생각을 하고
그사이 비는 땅을 적시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우산을 나눠 쓴 사람들이 걷는 사이
최후의 최후를 알리는 통지서처럼
식탁엔 저녁이 쌓이고 있다
적을 만한 기쁨이 남았는지
살필 뿐인 나, 아픈 개
시집들
나무와 우산이 세모로 접히고
마음은 비 한가운데
영원한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뿐인 것을
파래진 입술뿐인 것을
파래진 입술뿐인 것을 당신께,
어떤 마음은 붙박인 것들을
사랑하는구나 생각한다
뾰족한 잎들이 팽창하는 사이
밥알을 물에 불리는 사이
세모난 슬픔 속에서
젖은 사람이 더 젖은 사람의
둥근 어깨를 감싸는 게 보였다
문학동네시인선 207 남지은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064-065p
얼띤感想文
시제 ‘캄파눌라’는 초롱꽃의 일종이다. 원산지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 남유럽 지중해 연안이다. 풍경초 스페인 말, 영어로는 bellflower 다. 이 시를 읽는 데는 굳이 꽃에 집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시 또한 我와 非我의 문제다. 시와 시를 읽고 있는 나, 그 속에서 탈피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시집 한 권을 읽고 있고 작은 개는 낮잠 잔다. 시집을 읽으며 시집 속을 파악한다. 그것은 내 안에 머문 작은 개를 일깨운 역할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떨어진다. 어떤 자는 북에 닿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동남부 항구도시로 북쪽(顔面)을 상징한다.
시간이란 참 묘하구나 생각을 하고 그사이 비는 땅을 적시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우산을 나눠 쓴 사람들이 걷는 사이 최후의 최후를 알리는 통지서처럼 식탁엔 저녁이 쌓이고 있다. 시를 읽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의 시 몰입성, 그사이 문자의 행태에 대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 식물은 식물로 고딕의 개념이 닿고 우산을 나눠 쓴 사람, 무언가 가린 것 같은 문자를 은유한 것이며 최후의 최후를 알리는 통지서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겠다는 지면의 인사라면 저녁은 죽음은 부풀기 마련이다. 뭔가 쓰고 싶은 욕구는 생겼으니까,
적을 만한 기쁨이 남았는지 살필 뿐인 나, 아픈 개 시집들 나무와 우산이 세모로 접히고 마음은 비 한가운데 영원한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뿐인 것을 파래진 입술뿐인 것을, 그렇다. 시에 대한 회의다. 시를 읽다가 보면, 자책도 앞서고 더 심하면 피폐하게 할 뿐이다. 아픈 개는 거울 속 非我를 상징한다. 나무와 우산이 세모로 접힌다. 세모는 섣달그믐을 상징하지만, 구체에 이르지 못한 마지막 단계, 책을 접는 행위까지 곁들여 보는 것도 괜찮겠다. 나무는 식물이며 우산은 시어의 은닉을 상징한다. 마음은 비 한가운데 주룩주룩 내리는 현실성을 묘사한 거라면 영원한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뿐이며 파래진 입술뿐이라는 것을, 사실 시는 읽다가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 놀이로 읽다가도 그래 그러면서 마음을 닦는 글이었다. 어떤 때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어떤 때는 고독한 마음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도 너에게 편지와 같은 시를 쓰며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큰돈이 되었다거나 내 옷 하나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배려한 건 없어도 단지 내 옆에 앉은 말벗처럼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닌 것으로 볼 때 시인이 말한 어떤 마음은 붙박인 것들을 여기서 사랑한다며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파래진 입술 파란波瀾 언술을 상징한다.
뾰족한 잎들이 팽창하는 사이, 식물이 동물로 인해 뭔가 움직였다면 팽창은 이룬 것이고 밥알은 구체로 물은 세상의 이치를 상징한다. 세모난 슬픔 속에서 젖은 사람이 더 젖은 사람의 둥근 어깨를 감싸는 게 보였다. 세모난 슬픔은 이별의 순간을 묘사한다. 세모난 슬픔이 끝나면 둥근 어깨라 했으니 하나의 구체가 탄생한다. 탄생은 온 누리의 기쁨을 반영하여야 하지만 우리의 시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예술에 대한 진정성과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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