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데로나 흘러가는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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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로나 흘러가는
=전동균
오후 세 시의 의자에 앉아 햇빛 속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내 눈은 무릎 밑에 달려 있어 그들의 하반신만 보입니다 어제는 생각이 뚝 끊겨 집 반대쪽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큰 선인장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고 평화하였습니다 나는 어느 집 문을 두드리다 돌아와 신발을 신은 채 잠들었지요 오 차디찬 물살의 잠, 물속을 펄럭이는 검푸른 옷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은 헛되니 헛됨의 기쁨과 슬픔을 누려라, 그이들의 얼굴이 너무 환해 쉬 깨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내 눈이 발바닥으로 옮겨갔군요 햇빛도 빗줄기도 사라지고 의자는 아무 데로나 흘러갑니다 이것이 어떤 혁명인지 모르는 채 나는 흰 강아지, 파란 옥수수, 검은 돌이 되었다가 느닷없는 한 방 총성으로 흩어집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18 전동균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018p
얼띤感想文
우리가 죽고 난 다음의 세상은 무엇이 어떻게 이루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 혼 또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이승에 남겨둔 혼 쪼가리조차 어느 신발에 어느 발뒤꿈치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 사실 이런 거 보면 피곤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속 시끄럽다. 시끄럽다는 말 듣그럽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럽다가 그립다에서 나온 거라면 그리다, 무엇을 그리거나 아쉬움을 내포한다. 그것이 지나치면 시끄럽다, 그래서 시는 시끄러운 것이며 말 많아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영 없으면 외롭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 적당한 지면의 사랑은 지구 한 편을 그리는 것도 맞다. 멀찌감치 두고 보겠다 뭐 이런 말, 이것이 가장 좋다.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아도 앵하며 골목에 떨어뜨린 앵두처럼 붉게 착색하는 물감처럼 바다 너머 띄운 노을에 감흥이 인다.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를 본다. 오후 세 시다. 오후는 내가 죽고 난 후의 시간이며 세 시는 정 오른쪽 방향이다. 삶이 있고 생각이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그 삶을 묘사한 것이 햇빛 속 빗줄기라 했다. 하반신, 여기서 하반신은 몸 아래쪽 절반 부분이 아니다. 시에 닿을 수 없는 좀 뒤떨어진 하수下手에다가 반反하는 물질까지 겸한다. 선인장, 선인選人 뽑힌 사람 뽑힌 자들로 이루는 장일 것이며 도시圖示거나 도시盜視 즉 그리거나 몰래 엿보는 것을 상징한다. 흰 강아지, 검정 개에 비하면 역시 어리고 맹하다. 바탕이 없는 것이 된다. 파란 옥수수, 노란 옥수수에 비하면 여물지가 못하고 검은 돌, 흰 돌에 비하면 이것 또한 하수의 돌임은 틀림이 없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79주년을 맞았다. 100여 년 전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말을 잃을까 프랑스에서 극비리로 녹음한 우리 말, 이극로 선생이 있었다. 조선의 말 조선의 얼을 담고자 이후, 조선에 들어와 우리말 큰 사전을 펴내시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며칠 전, 지하철 독도 조형물을 철거한 후, 독도가 우리 땅이냐며 반론을 제기한 뉴라이트, 문제는 이들이 주요 역사 관련 기관에 발탁되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복은 있어도 역사는 아직 일제 강점기에서 조금도 못 벗어난 것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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