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게 =윤중목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낙엽에게
=윤중목
담장 밖 찬 공기가 사각사각 갉아먹던
오늘 비로소 당신의 사체를 치웠답니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수의를 입히지는 않았어요.
당신 몸이 온통 회색 버짐으로 덮여있었느니까요.
아마 당신은 생전에 썩 사교적이진 않았나봅니다.
당신의 영면을 기도해주러 아무도 오지 않았거든요.
문가 어디에도 부고장 하나 붙어있질 않았고요.
사실은 조문객이 무슨 큰 의미이긴 했겠나요.
방명록 위 이름 석 자만 적어놓고 돌아갈 뿐
밤을 세워 울어주는 이라곤 어차피 없없을 거잖아요.
하지만 죽기 전 당신은 분명 성자 같은 모습이었답니다.
하루하루 오그라드는 자신의 몸뚱이를 지켜보면서도
너그럽고 숫저운 얼굴빛을 끝내 놓지 않았으니까요.
을씨년스럽던 지지난밤 휘익 마침내 바람 한 점이
당신 목을 똑, 꺾어뜨려도 신음조차 내지 않고
너울너울 숨도 영혼도 거둬가게 했으니까요.
시작시인선 0505 윤중목 시집 화방사 꼬마 35p
얼띤感想文
오늘 지난번 주문한 책이 있어 종일 기다렸다 오후 늦게야 우편함에 몰래 넣어두고 간 이가 있었다 감자 사 둔 게 있는데 이것 좀 삶아 요양원에 다녀올까 했다만 그러지도 못했다 어머니께서 때마다 전화를 주셨다 전화 내용은 다음 주 생일이니 오지 말라는 것과 그때 동생이 올 것이니 그 주 주말이나 보자고 하셨다 구미에 커피 주문을 받았다 오래간만이었다 오후에 볶은 커피 담아 우편으로 보냈다 아마 내일이나 다음 주에나 받을 것이다 하루 건너 문장 보는 일, 욕심은 난다지만 머리는 받쳐주지 않는 일이므로 거저 하루 재밋거리로 읽고 쓴다 이러한 짓거리에 다들 어떤 모습으로 찾아와 볼까 싶어도 나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하루 마음 곤히 재우며 다듬고 하다가 조금이라도 삶이 안정된다면야 무엇이 그리 욕심낼 게 있을까 오늘도 여러 책이 왔고 그 책마다 기운 발길 따라 걷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니 길고 긴 땅끝 헤매며 다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본다 이러다 보면 종일 구름 가득한 것도 있으려니 그 천변을 걷다가 하나씩 지워지는 건 분명 있을 터 또 그러한 길이라는 것도 내 익히 전에 알았던바 오늘도 가히 촉촉 머물며 잠시 잠깐이나마 생을 이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束 崇烏日記 24.0816
김포
=김재석
개성이
조강에
장대를 짚고
멀리 뛰면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발끝 하나
다치지 않게
어느
때든지
[김재석 프로필]
1990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계간 (물과별) 편집주간, 2008 유심 시조 신인상, 시집 『까마귀』 외 다수.
얼띤感想文
시조다. 아주 짧지만, 많은 것을 담았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김포에 있는 조강이라는 지역명과 개성과의 관계 장대높이뛰기 해도 닿을 수 있는 곳 그만큼 지척이다. 물론 지리적 위치를 모른다고 해도 이 시는 참 재밌게 닿는다. 시제 김포는 금을 안겠다는 말이다. 굳이 한자로 변용한다면 김포金抱다. 누런 황금을 받아내겠다는 말, 여기에 개성이라는 시어도 열 개開와 이룰 성成으로 보면 시적 주체다. 조는 아침 조朝와 강으로 이루는데 강이 내포하는 것이 참 많다. 가령 강 강江, 굳셀 강强, 내릴 강降, 속 빌 강腔, 산등성이 강岡 등등 모두 시 객체를 꾸민다. 장대를 짚는다는 말, 부러질 것 같지 않은 곧음과 굳셈을 상징한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내겠다는 어떤 의지까지 있다. 발끝 하나 다치지 않게 말이다. 어느 때든지, 언제든 열어보아라. 기꺼이 다 받는 시 주체 김포를 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