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적힌 내력(來歷) =강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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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적힌 내력(來歷)
=강 정
콘크리트 복도에 흙 한 줌 소복 쌓여 있었다
손아귀에 쥐었더니 물이 흥건하고 그 위에 집 한 채 벌컥 솟았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바깥으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물 위를 건들건들 춤추는 집안에서
늙은 걸인 둘 아귀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
슬프고 흉측한 몰골이었다
집이 흔들리는 파동 그대로 음악소리 번졌다
무섭고 고요한 울음이었다
누군가 커다란 비닐 가방 안에 걸인들을 욱여넣었다
눈물이 온몸을 삼켜 가방이 볼록해졌다
거꾸로 쏟아낸 가방 안에 해골 두 개와
검은 북채 두 개 있었다
땅을 두드리자 비가 내렸다
바깥으로 나온 건지
안으로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선득 마주본 엘리베이터 거울 속,
웬 아이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자정이었다
나는 복도를 크게 휘돌아 집에 돌아왔다
커다란 두꺼비가 빗소리에 맞춰 울고 있었다
허기에 몰려 밥솥을 열었더니 흙이 가득 담겨 있었다
등 뒤에 나보다 더 어린 내 할머니가 북을 치며 울고 있었다
문학동네시인선 211 강 정 시집 웃어라 용! 020-021p
얼띤感想文
시제에서 논한 물은 하나의 진리를 상징한다. 물에 적힌 내력(來歷)이란 시의 순환론 즉 시가 밟아 내려온 하나의 역사를 얘기한다. 그러면 문장 하나하나를 보며 시어가 무엇을 얘기하며 무엇을 상징했는지 보자. 시어 중심으로 풀어보겠다.
콘크리트 복도, 콘크리트는 회색빛 바닥이다. 그 성질은 견고하고 딱딱하다. 시의 고체성을 대변한다. 그러니까 시집이나 이미 인쇄된 시를 상징한다. 복도는 복도伏禱로 엎드려 기도함을 뜻하지만, 복도처럼 오고 가는 것까지 소통을 은유한다. 흙, 모래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자들의 모임을 상징한다. 손아귀, 세력이 미치는 범위다. 그것을 꽉 쥐었다는 말은 뭔지 모르지만, 인식이며 물 그러니까 그 속에서 어떤 진리를 캐낸 것을 묘사한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바깥으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읽고 만 것인지 읽고 또 새로운 변이나 혁명은 없었는지 시측 대변은 알 수가 없다.
늙은 걸인 둘, 걸인은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 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 그 둘이다. 물론 시 인식과 부지를 통한 늙은, 죽음을 앞둔 것까지 생각하면 뒤에 나오는 해골과 북채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아귀, 탐욕을 상징한다. 밥은 구체를 상징한다.
슬프고 흉측한 몰골이었다. 집이 흔들리는 파동 그대로 음악 소리 번졌다. 아직은 미숙한 문장을 묘사한다. 그대로 내거나 다룬다면 누굴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먼저 죽음을 맛보겠다. 그러므로 집 온통 흔들리는 어떤 파동으로까지 묘사한다. 그것은 무섭고 고요한 울음이었다. 아직은 아니다. 시집을 내기에는 그러니까 내면의 숙성 과정에 대한 묘사를 울음으로 대신하게 한 것이다.
누군가 커다란 비닐 가방 안에 걸인들을 욱여넣었다. 비닐 가방, 무언가 내면이 다 비는 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 해체에 따른 어떤 까발림에 대한 묘사다. 시적 대변은 눈물이 온몸을 삼키는 일이지만 그 가방은 각종 분해된 시체에 볼록하기만 하다.
거꾸로 쏟아 낸 가방 안에 해골 두 개와 검은 복채 두 개 있었다. 거꾸로, 시의 역전이자 전환이다. 해골은 탈피라고 하면 어떨까? 문장의 완벽성을 상징한다. 검은 북채, 검정을 상징하는 말로 인식과 부지 혹은 상징과 각종 은유를 논하는 잣대겠다.
땅을 두드리자 비가 내렸다. 땅은 지면을 상징하며 비는 내면과의 소통을 상징한다. 무언가 써 내려간 행위적 묘사다.
바깥으로 나온 건지 안으로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시의 순환이자 진화를 논하는 장이며 수미상관식으로 쓴 장면이다. 엘리베이터, 계단보다는 좀 빠른 느낌을 준다. 수직 강하, 그만큼 속도와 회전력을 가미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웬 아이, 자를 상징한다. 자정, 가지런한 자를 이룬다.
두꺼비, 양서류의 일종 얼룩무늬도 있고 검정도 있다. 어두운 갈색도 있으며 황색도 있다. 흰색의 독액을 분비한다. 여기서는 그 두께까지 상징한다. 밥솥, 구체의 모임 즉 진실과 경전과 같은 알곡을 담은 그러나 밥알은커녕 모래와 같은 흙으로 이루었다. 그런 경전에도 못 미친 어떤 글을 잡고 읽고 있는 또 하나의 시객(할머니)이 있었다.
시인께서 흙이라 표현한 것은 실지 읽을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시라는 어떤 회의성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의 문학으로 보면 진정한 가치는 세모가 된 지 오래되었다. 모든 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하나의 펀(fun)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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