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영월에 갈 것이다 =이재훈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언젠가는 영월에 갈 것이다
=이재훈
내가 태어났다는 땅에 귀를 대볼 것이다.
영월의 장르가 생길 것이다.
물도 없고
구름도 없고
나무도 없는 중성의 세계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길 위에 있을 것이다.
점퍼를 입은 사람들을 볼 것이다.
새로 발행된 지폐의 냄새를 맡지 않을 것이다.
윤리를 잊을 것이다.
늘 어지러운 바닥에 누울 것이다.
친구들을 오래 안 만날 것이다.
창밖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오래 들을 것이다.
무를 수도 없는 사랑을 하고
구름과 약속할 것이다.
세상의 고아가 되어
명왕성의 시민이 될 것이다.
문학동네시인선 166 이재훈 시집 생물학적인 눈물 072p
얼띤감상문
시인께서 태어난 영월은 지역명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 민족 동란이었던 625가 터질 때 이중섭은 피난했다. 어머니께 함께 내려가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죽어도 여기서 죽을란다.’ 고향을 떠나 사는 것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일이라 막연한 희망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가 지향하는 고향은 물론 시 객체다. 내가 태어난 곳, 누가 읽어 주어야 그 의미도 있고 그 의미를 통해 함께 생을 나눈다. 영월이 아닌 영월盈月처럼 말이다. 그곳은 물도 없고 구름도 없고 나무도 없는 중성의 세계, 괴로움 같은 것도 없다. 세상 그 어떤 무게(지폐)도 지지 않을 것이며 윤리마저 잊을 수 있는 곳 영월처럼 어느 시인의 김포처럼 다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세계 물질적인 것은 고조 곤히 다 잊어버리고 늘 어지러운 바닥만 볼 것이다. 친구들을 오래 안 만나도 되며 다만 창밖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는 그 사랑만으로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상, 고아라도 좋다. 명왕성의 시민이 된다면야 내 모든 것 기꺼이 다 던져 넣을 수 있게 아주 포근하게 꽉 차게 시원히 가는 한 시민으로 설 것이다.
시어 명왕성, 지구보다도 작고 달보다 작은 별, 어둠을 상징하지만, 거리감으로 본다면 이것만큼 떨어져 있는 태양계의 별도 없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