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국과 바다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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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과 바다
=이승희
꽃이 피지 않은 해국과 바다에 대해 난 잘 몰라요 몰락하는 것의 기쁨 같은 것과 신발은 좀 작은 것을 사는 버릇과의 관계를 생각해요 내가 갈 수 없는 곳 바로 앞이겠지요 그건 바람의 말 같은 거라서 해국과 바다는 오래 말이 없어지는 사이 새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떠나가고 언제부터 아팠던 거니 두 손을 잡고 물어봐야 하는 그런 이야기들처럼 날마다 다시 시작되는 잠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끝을 잘 안다는 것은 그 끝에 서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멀다는 말을 이해할 때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밤이 딱 그런 모습입니다 아주 깜깜하게 투명해져서 울고 있었구나 내일을 말하는 자를 경멸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내일이 올 수 있었구나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쓰자 손바닥에 꾹꾹 눌러쓰자 곧 지워질 것이라고 쓰자 밤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무언가 자꾸 태어납니다 슬픕니다 슬프다는 말이 길게 해안선처럼 펼쳐집니다 고유해집니다 서로에게 기숙하기로 합니다 이름이 뭔지 끝내 묻지 않습니다
문학동네시인선 217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하게 094p
얼띤感想文
시인 이승희는 하나의 해국을 만들었다. 여기서 바다는 많은 시인의 보금자리다. 그 보금자리 하나하나가 하나의 국을 형성한다. 독자는 거저 여러 해국을 다니며 여행하는 관광객이다. 심지어 각 해국의 지도자는 서로 왕래하기도 하며 기숙하기도 한다. 새로운 해국의 국민을 만들었다면 그 국민을 관광객과 각 지도자께 내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소이다. 그쪽은 좀 어떻소? 네 요즘 통 태어나지 않소. 이러다 바다를 떠나 육지에 기거해야 할 판이오. 뭐 이렇게 말이다.
꽃이 피지 않은 해국과 바다에 대해 난 잘 몰라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은 누가 읽는 이가 없다는 말이며 바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워낙 방대한 곳이게 세세히는 모르나 아마 이런 곳이겠다는 것만은 안다는 내용이다. 역설이겠다.
몰락하는 것의 기쁨 같은 것과 신발은 좀 작은 것을 사는 버릇과의 관계를 생각해요. 시에서 몰락이란 어떤 한 형체에서 그것이 인식을 통해 지워지는 일일 것이다. 인식되지 않으면 되돌이표를 몰고 다니며 다른 이상한 형태를 지으며 뭔가 흥할 것이다. 시의 흥망성쇠興亡盛衰다. 신발은 좀 작은 것이란 반대로 신발을 좀 큰 것을 신겨드렸다고 치자. 얼마 걷지도 않게 금시 다 걷고 나면 시의 맛은 떨어진다. 그나마 작은 것을 신겨 드리니 그래도 오랫동안 걸으며 있으라 이런 내용이겠다.
서로의 끝을 잘 안다는 것은 그 끝에 서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죽음의 끝이고 하나는 탄생의 시작점이니 그 교차점에 함께 서 있는 것으로 멀다고 말을 할 때 가장 가까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중국에는 사랑이라고 쓴다. 손바닥에 꾹꾹 눌러쓴다. 손바닥은 지면을 상징한다. 그것은 쓰자마자 지워지는 것으로 시의 전환과 변이 어쩌면 혁명을 논하는 장이다. 밤바다를 보고 있다. 또 다른 해국의 탄생을 보는 것이 된다.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름을 알 수도 없거니와 물을 수도 없지만, 뭔가 태어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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