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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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김경미
새와 저녁노을을 배우면
기차를 만들 수 있다
연도(年度)를 익히면 후회를 배울 수 있다
알파벳 여섯 개의 조합법을 배우면
배신하는 남자와 여자를 만들 수 있다
잠 안 오는 밤에
눈에서 제일 먼 엄지발가락을 주무르면
수면을 부를 수 있다
나사를 풀 때
심장과 바깥쪽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수십 년째 외우지 못하고 헛돌지만
혀 닦는 법과
밤하늘의 별빛들만 제대로 습득해도
인간 구실 할 수 있다
민음의 시 308 김경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38-39p
얼띤感想文
자왈子曰: 학여불급學如不及,유공실지猶恐失之라 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배우는 것이 마치 힘이 미치지 않는 듯하다는 말, 그것은 늘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배운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마음 즉 공부다. 그러므로 공부는 내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다.
새와 저녁노을을 배우면 기차를 만들 수 있다. 새는 지면과 지구를 오가는 동물적 근성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새는 골목 어느 길가 어느 장부의 집에서 부르는 소리처럼 오는 것이다. 또한, 탁 막힌 공간에 틈을 은유하기도 한다. 꽉 낀 듯한 겨울에서 비집고 움트는 하나의 싹처럼 초록이 초록이 아닌 거처럼 우거진 골짜기 앞에서 진달래 술을 빚을 것이다. 저녁은 죽음을 상징하는 시어다. 죽음의 핏빛 같은 잎처럼 다 떨군 늦가을에 붉디붉은 홍시 같은 노을을 안다면 한 세상 잘 놀다가는 일 그 끝에는 기차처럼 엮은 이야기가 있겠다. 혼자 미소 머금고 씽긋이 웃음 하는 날 噫嘻 잘 살았다고 말이다.
연도를 익히면 후회를 배울 수 있다. 연도는 일정한 기간을 말한다. 내가 머문 시간에서 무언가 유한함을 느꼈을 때 한 세상을 닫아야 하는 시간적 의미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늘 있기 마련이겠다. 그 연도를 진정으로 안다면 삶의 매 순간은 진실로 꽉꽉 채우지 않을까 무엇을 남겨놓는다고 해서 공부가 아니라 내가 이미 밟고 간 것에 대한 경험으로 말이다. 그 뿌듯함으로 말이다. 사실, 고흐는 그림보다는 영혼의 편지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고흐의 삶과 그 삶을 잇는 투쟁에 고흐의 내면이 있다. 고독과 슬픔과 가난과 우울 그리고 주위에 아무것도 이바지할 수 없었던 미안한 마음까지 결국 그는 자살로 몰아넣었지만, 그 시절의 어려운 시대상을 반영한다. 연도, 내가 딛고 있는 해, 숭배만큼은 아닐지라도 인식은 있어야겠다.
알파벳 여섯 개의 조합법을 배우면 배신하는 남자와 여자를 만들 수 있다. 여섯에서 오는 육肉, 남자와 여자 모두 자로 이루고 있다. 문자에서 오는 혹은 글자에서 오는 마음 그것이 골목에 닿는 순간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탑을 형성한다. 그것은 가능성의 세계 상상으로 이루는 꿈의 세계다. 그러므로 처음에 닿았던 곳 동물적 근성에서 발한 여섯 개의 조합에서 등 돌려 달려가는 남자와 여자를 볼 수도 있겠다.
잠 안 오는 밤에 눈에서 제일 먼 엄지발가락을 주무르면 수면을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엄지는 엄지嚴旨다. 발하다 발發과 노래의 한 소절처럼 가락을 다룬다면 수면, 물이 있는 장 하나의 구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사를 풀 때 심장과 바깥쪽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는 수십 년째 외우지 못하고 헛돈다. 누구든 외우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나사는 羅思, 裸思, 아니면 羅死, 裸死로 뭐 변용하기 나름이겠다. 무엇이 되었든 마음으로 친다면 그 마음을 풀 때 안에서 푼다면 바깥이 잠길 것이고 바깥에서 푼다면 안에서 잠길 것이다. 易地思之의 역과 反面敎師의 반의 그 세계관 이것이 시의 세계다.
혀 닦는 법과 밤하늘의 별빛들만 제대로 습득해도 인간 구실 할 수 있다. 혀는 놀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을 머금고 오랫동안 닦는 일, 사고의 깊이다. 깜깜한 세계에서 그래도 내 영혼을 비추는 게 있다면 그것은 별빛 같은 시에 있을 것이다. 별과 함께 별빛에서 오는 그 빛을 타는 일, 우리의 마음 즉 내 마음을 밝히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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