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강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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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강 정
꽃잎을 따먹고 자란 아이는 무쇠인간이 되었다
스스로 멈춰버린 심장의 입구는 연분홍빛
푸른 이파리가 사람의 눈을 막는 커튼으로 펄럭인다
꿀벌들이 쇠를 먹고 비행기의 노선을 일그러뜨렸다
여행자들이 도시의 수맥 속에서 서로 철퇴를 휘둘러
솟아오른 물기둥이 성벽을 쌓았다
겨울 햇빛이 꽃들의 회전력으로 성층권의 얼음을 엮어 유리 그물을 펼칠 때
눈먼 자들의 자동차가 산소 속을 떠돌았다
올 것이라 믿었던 내일이 시계 속에서 한없이 뒤로 돌아
나비의 몸집이 거대해지고
강철을 씹는 나비의 이빨이 봄볕에 녹슬어갔다
꽃잎을 먹고 자란 시인은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쇠붙이들을 녹여 다음 세대의 골격을 가설하니
상한 칼날에 맺힌 녹의 형태가 기나긴 침묵의 서언(序言)이었다
천년 동안 힘을 모은 꿀벌이 시든 꽃들에게 절했다
세상의 모든 집이 아름다워졌다
삼계(三界)의 마지막 쉼터가 천국의 빗장에 독을 묻힌 거다
문학동네시인선 211 강 정 시집 웃어라, 용! 018-019p
얼띤感想文
시를 생각하면 참 우습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시인은 절대적으로 시를 믿는 신자라는 사실, 왜? 시를 찬양하며 사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시를 믿고 산다. 그러나 찬양까지는 아니다. 아부, 아부라고 했니? 나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가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행씩 한 문장씩 시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시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시인은 그 힘의 범위를 다 나열해 보였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시인은 태어나고 시는 계속 바다에 던져질 것이니까!
시를 읽는 독자는 물론 시를 생각하며 시를 읽을 수 있겠고 시 아닌 다른 그림자를 떠올리며 시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찬양 조로 나가다 보면 유치장에 묶인 발, 그 유치를 보는 일, 마치 어린이가 어른을 보며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가끔은 어른다운 애가 더 그리울 때도 있다. 자가 치료가 가능하고 자가 오 일은 도망친 듯 병원을 비우는 일로 자가 흐르는 물이 있다면 그것을 오롯이 받아 비우는 물레방아처럼 자가 대문 앞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서로 악수하며 미래를 다부지게 엮는 것으로 말이다. 딴소리, 따먹은 소리 그만하자. 시를 본다.
꽃잎을 따먹고 자란 아이는 무쇠인간이 되었다. 여기서 꽃잎은 시집 속의 시 하나를 은유한다. 무쇠 인간이면 변이된 어떤 자아 발견이다. 스스로 멈춰버린 심장의 입구는 연분홍빛, 푸른 이파리가 사람의 눈을 막는 커튼으로 펄럭인다. 심장은 시 주체다. 푸른 이파리는 시 주체일까? 생각해본다. 푸르다는 건 아직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시 객체다. 근데, 입구라고 했다. 출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연분홍빛? 사랑은 어쩌면 진행형이다. 블랙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다. 블랙이거나 백색이면 출구의 색깔. 그리고 분홍은 가루(粉)처럼 오고 안개(雰)처럼 온다. 모두 나누는 일이다. 꿀벌들이 쇠를 먹고 비행기의 노선을 일그러뜨렸다. 쇠는 강직하다. 꺾을 수 없는 꺾이지 않는 성질로 시를 대변한다면 비행기의 노선은 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겠다. 비행기 또한 비행기飛行記처럼 본다. 기체가 아닌 기록의 관점으로 말이다.
여행자들이 도시의 수맥 속에서 서로 철퇴를 휘둘러 솟아오른 물기둥이 성벽을 쌓았다. 시의 보호 본능의 장이겠다. 쉽게 허물 수 있는 곳이면 그건 시가 되지는 않겠다. 하지만, 너무 꼬아놓으면 그것 또한 시라기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도껏 해야 읽는 맛이 있고 무언가 뜯는 재미도 있으니까!
겨울 햇빛이 꽃들의 회전력으로 성층권의 얼음을 엮어 유리 그물을 펼칠 때, 겨울 햇빛은 시 주체며 꽃들의 회전력은 시 객체다. 성층권의 얼음을 엮는다. 성층권은 대기권의 하나가 아니라 성곽 주위로 하나의 범주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성을 이루는 재료의 모음과 같다. 그 재료의 엮음은 곧 유리 그물로 이루며 무덤을 형성하는 일 이는 하나의 성을 이룬 것이며 시의 출현이다. 눈먼 자들의 자동차가 산소 속을 떠돌았다.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이는 機體가 아닌 동체다. 무덤을 끼고 돌았다는 얘기, 왜 그랬을까? 그건 자아의 발견이자 꽃잎의 기대다.
올 것이라 믿었던 내일이 시계 속에서 한없이 뒤로 돌아 나비의 몸집이 거대해지고, 시계는 주어진 시간 속 내가 볼 수 있는 범위 시야다. 나비는 나 아닌 것 혹은 나와 견줄만한 것을 상징한다. 나非 혹은 나比처럼 말이다. 강철을 씹는 나비의 이빨이 봄볕에 녹슬어갔다. 그만큼 무디거나 쓸모가 없거나 사장되겠지. 꽃잎을 먹고 자란 시인은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쇠붙이들을 녹여 다음 세대의 골격을 가설하니,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고, 상한 칼날에 맺힌 녹의 형태가 기나긴 침묵의 서언(序言)이었다. 칼날은 문장을 뜯고 헤쳐보는 일을 묘사한 것으로 녹의 형태는 이와 같은 감상문에 가까울 것이다. 기나긴 침묵의 서언은 시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겠다.
천년 동안 힘을 모은 꿀벌이 시든 꽃들에 절했다. 그러니까 꿀벌은 시 주체가 확실히 맞다. 꿀벌은 한자로 말하자면 꿀벌 봉蜂이다. 밀봉하다의 봉은 봉할 봉封으로 쓴다. 봉에서 봉으로 유추하며 시어를 끌어다 썼겠다. 천년은 옮기며 밟고 뜯고 비튼 것 그 기간을 상징한다. 굳이 한자로 변용한다면 사마천의 그 천遷이며 년은 비틀거나 그 무엇의 년撚, 시든 꽃들은 생명을 다한 시, 죽음을 면하지는 못했다.
세상의 모든 집이 아름다워졌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시집 하나 엮었으니까, 삼계(三界)의 마지막 쉼터가 천국의 빗장에 독을 묻힌 거다. 삼계는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를 말하며 천국의 빗장에 독을 묻힌 일이므로 지옥에나 들어설 일이겠다. 까마득히 묻어 놓는 일, 그것은 사장으로 암흑의 세계에 놓이는 것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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