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남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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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남지은
멍든 무릎이 숲으로 번진다
밤이 낳고 간 알의 악몽
세어보지 마
세어보는 손가락부터 지워질 거야
잃어버린 그림자
나를 엎지르고 태어나는 그림자
한 발에 사실의 사슬을
한 발에 진실의 사슬을 매달고
가볍게 떠올라
꿈의 기슭에 우릴 첨벙첨벙 빠뜨리는
그림자를 오리자
수치심을 나누어줄게
층계마다 묵상의 죽은 발이 놓이고
문학동네시인선 207 남지은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 019p
얼띤感想文
그렇다, 시는 분명 멍든 무릎이었다. 그것도 숲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로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품은 그런 무릎이었다. 한동안 망연자실茫然自失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손자를 무릎에다가 올려놓고 불알을 움켜쥐듯 밤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은하수 가르는 별똥별에 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이나 지났을까! 무거운 잿빛 구름은 하늘 가르며 정수리에 닿았고 천장은 전등알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세어보지 마, 세어보는 순간 손가락부터 지워질 거야, 한참이나 손가락을 빨며 나 응애예요, 그러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잃어버린 배에 전복된 사고였으니 차차 무게중심은 높아지고 중력과 부력은 균형을 잃어 갔다. 잃어버린 그림자, 골목에 서 있는 남자 나를 엎지르고 태어난 그림자, 북방을 계획하며 칼을 빼 든 주몽의 길에서 큰 산맥에 가로놓여 진격할 수 없는 일 한 발에 사실의 사슬을 묶고 한 발에 진실의 사슬을 매달고 말 등에 오른다. 나에게 꿈은 있었던가? 반문해 본다. 저기 양 절벽을 끼고 매매 핥아 오르는 길 그림자는 수치심의 호수를 낳아 끊어질 듯한 가문의 긴 대를 잇고 만다. 야심도 하니 한가로이 봄기운을 즐기는 산양 무리가 그 어떤 연유도 모르고 저벅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은 유난히 청정하고 푸르른데 층계는 직각으로 구부러진 묵상을 단풍나무 구멍에다가 일절 망설임 없이 그대로 내리꽂아 넣고 말았다.
‘오르간’이라는 시제로 쓴 시는 시인 함기석 선생께서 쓴 것도 있어, 시마을에 올려두었다. 오르간 다른 말로 하면 풍금으로 건반의 색조가 마치 깜빡거리는 차폭 등처럼 온다. 시는 층계마다 묵상의 죽은 발이 놓이듯 어쩌면 줄줄이 낳은 자식 복에 말년은 흐뭇하다 못해 껄껄 웃고 지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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